갯마을/유예 외 - 한국소설문학대계 36
오영수 외 / 동아출판사(두산) / 1995년 4월
평점 :
절판


흔히들 동족 상잔의 비극이라 일컫는 6·25가 있은지도 언 반세기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그 아픔은 수십년의 세월 속에 깎이고 묻힐만도 하건만, 아직까지도 우리네 가슴 속에 진하게 남아있다. 전쟁을 조금도 겪어보지 못한 지금 청소년들이라고 해서그들의 아픔을 전혀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지난 번 TV를 통해 전국으로 흘러 나갔던 3차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보며 그 누가 함께 눈물 짓지 않을 수 있었단 말인가? 전쟁과 분단의 상처는 미약하게 나마 우리 가슴에도 아로 새겨져 있다.

전쟁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섬뜩하고 진저리 난다. 곧 죽음이라는 단어와 결부되어 생명을 담보치 아니하고는 도저히 겪어낼 수 없는 것이 바로 전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종 접하는 전쟁 영화나 소설 속에는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용감한 이들이 등장하곤 한다. 민족과 겨레 위해 의리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생명을 고결히 바치는 그들이다. '유예'의 주인공 역시 그러한 인물이다. 비교적 짧은 시간을 배경하여 액자식 구성을 취하는 이 소설에서는 죽음을 앞둔 주인공의 심리 묘사와 그 당시 전쟁상을 살펴볼 수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너무나도 의롭고 담담한 주인공의 태도 앞에 절로 고개 숙이게 한다.

자신 역시 죽을 것을 알면서도, 동지의 죽음을 단순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분명 몇 날 며칠 '삶'을 위해 힘겹고 위험한 투쟁을 해왔건만, 그동안의 탈출이 무색하게도 그의 선택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인민군의 포로가 되어서도 분명 비굴하게나마 살 방법이 있었음에도 그는 '의로운 죽음'을 선택했다.

6·25 당시 '유예'의 주인공과 같은 인물이 비단 한 둘이었을까? 전국 곳곳에서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들도 진정 죽음이 두려웠겠고 삶의 욕구가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였으리라. 우리도 그 당시 그들을 떠올리며 한 번 쯤 삶의 '유예'에 대해 떠올려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지금 이 순간, 내게 1시간의 삶의 기회만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유예'가 보여준 짧은 모습은 삶과 죽음이라는 극단적이면서도 분명한 명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해 주었다. 그리고 먼 훗날 내가 죽음 앞에 놓여 있을 때 나의 '유예' 역시 그처럼 아름답고 명분 있는 것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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