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 옛날이야기 × 본격 미스터리 트릭
아오야기 아이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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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며질 수밖에 없던 착한 아이들



엘렌은 자서전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동화를 쓴 안데르센에게 자신의 휘황찬란한 이야기를 했고, 글을 쓰라고 했다. 하지만 안데르센이 쓴 동화는 우리가 알던 <성냥팔이 소녀>의 이야기였다. 거기에는 엘렌이 자수성가한 이야기도 없었고, 리더로써의 모습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엘렌은 분노하여 안데르센을 찾아갔지만, 이미 안데르센은 떠나고 난 후였다.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서.

제가 쓸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당신처럼 오로지 돈벌이만을 삶의 가치로 추구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읽힐 수 없습니다. 모쪼록 청렴하게 사시기를 바라며.

-안데르센

p.265

여기서 내가 초점을 맞춘 건 ‘~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읽힐 수 없’다는 안데르센의 말이었다. 그렇다. 그는 돈벌이만을 삶의 가치로 추구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읽힐 수 없었고, 그렇기에 엘렌의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그리고 엘렌의 자서전이 쓰이지 않음으로써, 엘렌의 삶은 불완전한 것, 미완성인 것, 본받지 말아야 하는 것이 되었다. 엘렌의 삶이 마냥 나쁘기만 한가? 엘렌은 실패한 삶을 산 것인가? 동화에는 꼭 ‘착한 아이’의 이야기만 담겨야 하는가?

1장부터 각색되어 나왔던 <빨간 모자>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성냥팔이 소녀>의 주 공통점은 아이들이 착하다는 것이다. 새엄마와 언니들의 구박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틴 신데렐라는 결국 왕자를 만나 행복해졌고, 과자 집에서 탈출한 헨젤과 그레텔은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 새엄마를 내쫓고 행복한 가정을 맞이했으며,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왕자의 입맞춤과 함께 저주에서 풀렸다. 이중 <성냥팔이 소녀>만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지만, 그녀가 착한 아이라는 것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착한 아이의 모습만을 담고 있는 동화.

오히려 그게 더 어색하고, 이상하고, 판타지적이지 않을까?

<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라는 책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그래서가 아닐까 싶다. 마냥 착하기만 한 아이 타이틀에서 벗어나 좀 더 성장한 아이가 겪는 이야기. 할머니의 복수를 위해 떠나는 여행길.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나는 가지각색의 이야기 주인공들. 착한 동화 속 착한 아이 이미지를 벗어난, 욕망을 품은 소녀들의 이야기. 그녀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통쾌하기도, 안타깝기도 했다. 동화를 벗어나 욕망을 얻은 그들이었지만, 끝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음만 강하면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며 살 수 있어."

"사람은 원래 심약해."

p.291

어떻게 살아야 할까?

착한 아이로 살기엔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나쁜 아이로 살기엔 받는 눈초리가 너무도 따갑다.

어떻게 살든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참 어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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