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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이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현대문학에 대해 알고 싶어 읽게 된 책이다. 저자는 내가 책은 여러 권 사 둔 적 있으나 이 책으로 처음 그의 글을 읽게 된 유명 서평가이다. 문학비평서 또한 거의 처음 읽는 바, 저자의 전공은 러시아 문학인데 한국 현대소설에 대해 평하는 책이라 특색있게 느껴졌다.
책에는 6.25 이후로 저자가 생각하는 10인의 주요 한국 현대소설가와 대표작에 대해 비평한 글들이 수록돼 있다. 이 가운데 나름 계보도 기술돼 있다. 이 책은 원래 저자가 한국현대소설에 대한 강의를 묶어서 펴낸 것이라 한다. 서문에 명확히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강의와 평론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는 형태의 글이라 할 수 있겠는데 느낌상 평론에 좀더 가까우며, 읽어보면 알겠지만 저자의 말처럼 '가급적 주관적 견해를 앞세우고자' 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10인의 한국현대소설가의 대표작 중에 5편은 읽은 적 있으나 오래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일단 서문 이후에 바로 10인의 작품에 대한 비평이 있어 좀 아쉬운 면이 있었다. 저자가 생각하는 간략한 한국현대소설 개괄을 서문 다음에 싣고 각론처럼 10인 작품에 대해 논했다면 뼈대가 좀 살아나면서 좀더 이해가 쉬웠을 것 같다. 덧붙여 전향적으로 2020년대에는 어떤 문제의식을 가진 소설을 기대하는지 밝혔으면 좋았을 듯하다.
저자의 각개격파식인 각 비평의 면면을 보면 책의 부제처럼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것이 상당히 강하게 펼쳐져 있다. 아니, 사실'세계문학'이라고 써 놓았지만 압도적으로 서구문학 위주고, 애초에 우리 문학은 변방으로 배치돼 있다. 서구 문예 사조(이렇게 이름을 붙여도 될지는 모르겠지만)의 틀에 너무 끼워 맞추어 우리 문학을 해석하려 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저자의 전공과 무관하지 않을 텐데 리얼리즘, 모더니즘, 노동 문학 등... 마치 공식처럼 이 시기라면 이런 문학이 나와야 하는데 이런 작품이 나왔거나 아니면 한국에는 그런 작품이 안 나왔다, 하는 설명이 많았다. 그런데 우리의 시대적 배경은 서구와는 분명히 다르다. 신분제 계급 사회에서 사회 혁명을 겪고 이런 저런 사조가 시대에 따라 연이어 나타난 서구 문화권과 달리 우리는 일제 식민 지배 직후 한국 전쟁을 겪고 압축 경제 성장을 하면서 많은 급격한 변화가 수반되었다. 물론 당대 유행하는 사조를 해외에서 수입해 오는 유학파들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이 꼭 우리 사회의 실정에 맞는 것도 아니고 지식인의 관념적인 유희나 논설로 끝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마치 서구에 이런 시대에 이런 사조의 문학이 나왔는데 우리 문학에는 그런 것이 없고,... 이러한 논조는 한국의 독특한 상황을 무시하고 서구 문학을 준거로 삼아 그 프레임에 억지로 재단하니 안 맞을 수도 있다. 저자는 김동리 류의 샤머니즘 문학이 이데올로기 등은 삶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 배제하고 '한국적 특성'에 주목하는 태도야말로 대단히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 정치적인 의미라는 것이 문단 내 권력인지 아니면 실제 어떤 정치적인 행위라는 것인지 설명이 없어 모르겠지만, 서구에 없는, 우리 고유의 것이 담긴 소설에 대한 평가는 박한 것으로 느껴졌다.
대체로 저자가 내세우는 '중요한' 현대소설의 기준은 일단 장편이어야 하고 현대를 오롯이 잘 담아내면서 문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는, 시대정신이 핍진하게 들어있어야 하는 듯하다. 장편이어야 사회의 총제적인 모습을 담아 문제의식을 잘 드러낼 수 있고 단편은 그러기엔 미진한데, 우리 나라 현대소설 중에 그런 장편은 적고 단편이 우세하다고 한다. 그리고 역량있는 작가가 단편으로 그치거나 저자가 생각하는 중요한 장편을 안 낸 것을 한계로 보는 대목이 많다. 그런데 꼭 장편이어야 하는가? 단편이 안 될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단편이 인물이나 사건 구성이 협소하긴 하지만 뭔가 짧고 강렬하게 주제의식을 표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단편이 정말 장편보다 작품성이 못한가? 저자는 최인훈의 <광장>도 장편이라기보다는 중편이라고 하였는데, 이 역시 톨스토이나 도스토옙프스키같은 아주 긴 장편이 많은 러시아 문학 전공자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작품에 대해서도 물론이거니와, 소설가의 인생에 대한 간략한 설명에도 주관적인 느낌이 묻어났다. 특히 김승옥 항목에서 김승옥의 아버지의 부재라는 측면이 작품에서도 나타나며 나중에 이 부재는 종교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찾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으로 간단히 써놓았다. 하지만 아버지 없는 사람이 모두 하나님한테 귀의하는 것도 아니며, 어떤 종교를 믿게 되는 데에는 개인의 여러 가지 상황이 작용할 수 있다. 저자가 일부의 정보만을 가지고 비약을 한 것은 아닌지.
주관적인 평가는 이문열의 작품편에서 소설 속 등장인물과 비교해 '실제의 이문열은 훨씬 더 계산적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부분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순전히 저자의 느낌일 수도 있는데 그대로 활자화해서 읽기 좀 불편했다. 또 이문열이 신분상승을 위해 사법시험에 도전하다 실패 후 문학에 도전하여 크게 성공했다고 여러 번 언급했는데,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었다. 과연 부정적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문학을 하는 사람 중에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또는 인생에서 성취를 위해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 이에게는 신분상승의 욕구가 재능을 발휘하게 하는 강하고 긍정적인 원동력이 될 수 있 다. 이런 류의 예들에서 서평가가 소설가의 인생까지 평가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책에는 여러 군데에 중언부언하는 문구나 문장들도 있었다. 체계적으로 기술하면서 한 번 씩만 임팩트있게 언급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소소하지만 한 가지 옥의 티로 p139에 <무진기행>과 관련하여 언급한 <적과 흑>에서 줄리앙 소렐이 남작의 딸을 유혹했다고 했는데, 이 딸이 Mathilde 얘기 라면 남작 아니고 후작(marquis)이다, 라 몰 후작의 딸.
책의 어떤 부분은 신선하기도 했다.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더 심오한 그 무엇), 그리고 문체가 아름다운 것이 독자로 하여금 작품의 문제의식이나 주제에 아니라 화려한 문장에만 주목할 수 있어 독서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내용들이라 흥미로웠다.
전체적으로 간헐적으로 흥미로운 구석이 있기는 하나 우리 현대 소설을 너무 서구 문학의 사조와 장편소설이라는 프레임에 끼워맞추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