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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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첫사랑의 실패를 겪은 후 열살 전후의 소녀들에게서만 성욕과 사랑을 느끼는 험버트. 소설에서 자주 드러나듯이, 그는 자주 자신에게 ‘험버트’라는 주어를 사용한다. 이는 험버트가 여전히 십대 소년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자신의 사랑이 님펫에게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깊게 생각하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어린아이의 사고가 그것을 뒷받침해준다. 그는 롤리타를 손에 넣고 한참 후에야 후회한다. 그는 퀼티를 죽이고 감옥에 들어간 후 롤리타와 자신의 사랑을 늙지 않는 불멸로 만들기 위하여 활자로 출판하고자 한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험버트는 나이와 자본의 권력을 이용하여 어린아이를 꼬셔 섹스를 한 파렴치한 패륜아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를 순진하고 순수한 롤리타는 어른에게 이용당하는 어린 소녀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롤리타와 험버트 사이에서 일어난 무수한 권력관계에 대해 주목한다. 그는 롤리타를 생각과 시각과 닿을 듯 말듯한 촉각으로 흠모하며 애무했으나 그의 팽팽하게 당겨진 욕망의 입구를 열어버린 것은 롤리타이다. 그녀는 험버트에게 자신의 값어치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게임을 한다. 그와 섹스를 하는 대신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그리고 돈까지 얻는다. 험버트는 섹스를 해달라며 애원하고, 그녀가 도망갈까봐 안달하며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모든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들 사이에서의 권력은 절대적으로 험버트가 쥐고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롤리타 편에 더 많이 가 있기까지 하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작가는 롤리타의 영악한 면을 드러내어 험버트의 죄를 사면하려고 했던 것일까?


롤리타는 영악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롤리타에게 맹목적인 험버트와 그를 이용하는 롤리타와의 관계는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알 수 없다. 때로는 험버트의 진심을 몰라주는 그녀가 얄밉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녀는 정말로 영악한 마녀일까? 12살 짜리 어린아이를 보니, 롤리타가 어리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그리고 가슴이 봉긋하게 올라오던 시기에 중학생, 고등학생 오빠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 딱 달라붙는 옷이나 머리스타일로 어른 흉내를 내던 나의 12살 때의 모습을 생각해보니, 그녀의 유혹과 도발적인 행동 또한 이해가 간다. 그녀는 영악한 것이 무엇인지, 나쁘고 좋은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판단하기엔 아직 도덕적 잣대에 덜 물들어 있다. 잡지 책에서 본 것, 친구들과 떠드는 것, 그리고 그 나이 또래에 가지게 되는 호기심으로 그녀는 유혹과 섹스로 어른과 게임을 하는 것 뿐이다. 즉 그녀에게는 험버트와의 시작이 하나의 놀이일 뿐이인 것이다. 자신의 짓궂은 놀이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매일 밤 자신을 울게 만들지 예측하지 못한다. 어른의 흉내를 내는 어린아이인 롤리타와 어른의 모습으로 어린아이의 세계에 사는 험버트. 우리는 꼭 이 둘 중 누가 더 나쁜 사람일까?


역자는 후기에서 욕망을 결여된 것, 다가갈수록 허무해지고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롤리타를 위하여 자신의 인생을 걸어버린 험버트의 욕망에 대한 실례라고 생각한다. 니체는 욕망을 힘에의 의지로 본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 가장 강렬한 힘을 쏟아붓는 것을 욕망이라고 한다. 그것은 절대 결여된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힘 자체로 이미 충만한 것이다. 충만한 힘이 가고자 하는 곳. 그곳에 욕망이 있는 것이며, 그래서 그것은 니체에게 있어서 적극적이고 좋은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롤리타를 가질 수 있었고, 그리고 비록 롤리타가 도망치기는 했으나 님펫이 아닌 여자로 변한 롤리타를 여전히 사랑할 수 있었던 험버트의 욕망은 결여된 병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자체로 충만한 것이다. 그 자체로 완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험버트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이 더 많이 남은 롤리타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험버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그녀가 험버트를 만나지 않고 계속 캠프 큐에 머물러있었다면 찰리에게 이용당하여 포르노 배우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가정을 내세울 수 있듯이 말이다. 억지일 수도 있겠지만, 욕망의 관점으로 생각을 좀 뒤집어보았다. 롤리타는 험버트의 팽팽한 화살을 당겼고, 그를 속이고 퀼티를 따라갔으며 그것이 아닌 듯 싶자 그곳에서 나와 일을 하며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후에 임신한 그녀를 찾아온 험버트의 동행 제안을 거침없이 거절한다. 이렇듯 롤리타는 계속해서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만들어내고 충족시켜 나가고 있는 롤리타의 앞으로의 인생에 대하여 내가 걱정할 부분은 없었다. 그건 온전히 그녀의 몫이므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안에 주입되어 있는 좋고 나쁨, 도덕과 비도덕을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착한 것은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나쁜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 절대로 세상은 이런 단순한 논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작가는 보여주는 것 같다. 롤리타와의 사랑이 문제 되는 것은 어른이 어린아이를 성적으로 원하고 섹스를 했다는 것이다. 만약 섹스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아이를 예뻐해주는 것은 괜찮지만, 절대로 섹스를 해서는 안된다 라는 논리.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로 당연한 것일까? 나는 여기에서 어린아이와 섹스를 하는 건 그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며 어른이 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따분한 말을 나누고 싶은 것이 아니다. 롤리타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말로 당연한 것일까 라는 물음을 던지고 싶은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처음부터 이 책은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읽을 수 없는 책이었던 것 같다. 니체의 책 ‘선악의 저편’이라는 제목처럼 윤리적 잣대를 부러뜨린 후 선악의 저편에 있는 관점에서 이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도덕에 빠지면 많은 것을 놓친다. 그 놓친 것 안에 빛나는 수 많은 것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어른 흉내를 내며 놀이를 하고 있는 그래서 순수하지만 순수하지 않은 롤리타와 여자가 되어버린 롤리타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순수하지 않지만 순수한 험버트를 통해 인간의 복잡 미묘한 심리와 보편적인 것에 대한 물음을 던질 수 있게 한 1950년대의 작가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는 소설은 실재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죽어서도 끊임없이 논란을 던지며 살아 꿈틀거리는 그의 소설이야말로 실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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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Mr. Know 세계문학 45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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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가 구효서는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에서 
소설은 하찮은 것을 진지하게 만들고, 진지한 것을 하찮게 만든다고 말했다.  
  

체홉 단편의 평론가는 체홉의 소설을 

하찮음 속의 진실이라 말했다. 

나 또한 체홉의 단편을 읽으며, 그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체홉의 소설을 읽어보면, 

대단한 미사여구나 기교가 아니라 섬세하고 정확한 문장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대가들은 문장의 기술이 아니라 문장의 유기성과 주제의식으로 승부하는 것 같다. 

그의 소설은 우리들의 일상에서 소재를 취한다.  

그것을 한줄로 요약하면 신문기사에도 오르지 못할 하찮은 일에 지나지 않지만 

체홉이 그것을 끌어내었을 땐, 그것이 우리에게 감동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소설이 된다.  

그의 소설에는 여러가지 시선이 있다. 

소시민의 한심함, 인간의 어리석음, 사랑과 기억의 아련함, 소외된 자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 등이 있다.  

그리고 소설이 아니라면 우리가 굳이 생각하지 않을 듯한 인물들이 나온다. 

나는 체홉의 날카로운 포착과 다양한 시선 그러나 인간애를 잃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 좋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이란 무엇일까 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을 이해하는 것, 타인에게 한 발 짝 더 들어가는 것이 소설이라면 

체홉의 작품은 소설이 무언지 제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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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 단편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50
기 드 모파상 지음, 김동현.김사행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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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는 특별한 소재로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소소한 소재로 특별한 소설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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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삶과 전설 1
부사령관 마르코스 지음, 주제 사라마구 서문, 후아나 폰세 데 레온 엮음, 윤길순 옮김 / 해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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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기 위해 죽습니다. 마르코스는 치열하고 예술적인 삶을 사는 이 시대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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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 시인선 346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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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긍정으로 회귀하지 않는 부정의 부정으로서의 시 라고 자신의 시에 대해 말한다. 

그렇다면 이 시는 함께 나누고, 공감을 얻기 위한 시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시집을 다 읽고 난 후 

솔직한 독백이라 이름 붙였다.  

시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 과감하게 독백한다 

그런데 그 독백이 이상하게 자꾸 머리를 울리고 가슴에 남고 입술로 되뇌이게 한다. 

부정의 부정으로서의 독백이지만, 

의도하지 않은 공감을 일으키는 심보선의 시야말로, 

함께 나눌 수 있는 긍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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