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 한승오 농사일기
한승오 지음, 김보미 그림 / 강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젊어서는 학생운동으로 시간을 보내고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사회생활은 출판사를 운영해본게 전부인 저자는 나이 사십줄이 되어서야 한번뿐인 인생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되고 참된 삶을 꾸려보고자 귀농을 선택한다. 귀농 7년차인 농사꾼 한승오씨의 농사일기는 잔잔하면서도 애절하다. 그의 일기를 읽노라면 생명을 틔우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숴가며 일하는 농부들의 힘겨운 삶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힘겨움이 종종 귀농을 꿈꾸는 나같은 사람들에게 부담스레 여겨지기도 하지만 불필요한 환상에서 깨어나 냉혹한 현실을 바라보도록 도움은 주는 면도 크다. 모종이 벼가 되기 위해서는 아늑했던 보금자리를 떠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차가운 땅바닥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적당한 때에 땅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모판에서 웃자란 모들은 그 뿌리가 얕기 때문에 비바람에 쉬이 쓰러진다. 하지만 땅에 뿌리를 단단히 박은 벼는 웬만한 비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모판에서 땅으로 옮겨심어진 벼들은 몸살을 앓는다. 새로운 야생의 환경에 적응해가는 과정은 썩 자연스럽지 않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환경, 특히 아늑했던 보금자리를 떠나 거친 세상을 맞보려는 자들에게는 몸살이 뒤따른다. 우리 집도 몸살을 앓는 중이다. 편안했던 보금자리(아파트)를 떠나 산 밑에 있는 단독주택으로 옮기기로 결정했을 때도 이미 예견했던 일이긴 하지만 막상 터를 옮겨보니 직접 체감하는 어려움은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 그러나 이런 몸살을 한차례 앓고 나면 세상을 보는 시각, 나를 보는 시각이 분명 달라질 거라 믿는다. 변화는 자연스럽지만은 않다. 우리는 자연스런 연결을 꿈꾸지만 실상은 단절의 아픔을 필요로 한다. 그런 단절이 무서워서 변화를 애써 외면하기만 한다면 그 인생은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고 웃자란 벼마냥 외부 환경의 세파에 정신없이 흔들릴 것이다.

가족의 얘기가 거의 없어서 못내 아쉽다. 이제사 스무마지기(4000평)를 혼자서 농사짓는 중견 농부로 변한 저자의 뒤편에서는 분명 쓰리고 아픈 가족의 이야기들이 즐비할거라 생각되는데 그 이야기가 쏙 빠져있어 아쉽다.

늦깍이 농사꾼이지만 우직하게 자신의 철학을 지켜나가는 저자가 대단해보였다. 트랙터로 하면 몇시간이면 끝낼 땅갈기 작업을 우직하게 경운기로 며칠간 돌리는 모습을 보면, 건조기로 짧은 시간 안에 말리면 될 쌀을 고집스럽게도 때 맞추기도 어려운 햇볕에 말리는 모습을 보면, 제초제 몇 통이면 해결될 일을 마다하고 질게 뻔한 잡초와의 전쟁을 마다않는 모습을 보면 생명을 아끼고 자연을 존중하고 인간미를 잃지 않는 저자의 생각에 경외감이 들 정도다. 이런 농부들의 이야기가 있기에 나같은 어리숙한 사람들이 '질게 뻔한 생존싸움'의 터로 찾아들어갈 꿈을 꾸게 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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