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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의 공개성과 정치 지도자 선출 외 ㅣ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14
막스 베버 지음, 이남석 옮김 / 책세상 / 200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정치에 대한 변명
지난 8월 일본의 54년 체제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제 1야당인 민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 석을 확보함으로써 54년 만에 첫 번째 정권 교체를 한 것이다. 민주당은 변화를 선택한 국민들의 뜻을 반영하여 여러 가지 공약을 내놓았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공약은 ‘관료 제도의 개혁’이다. 일본의 관료사회는 반세기 이상 사실상 ‘무소불위의 행정’을 휘둘러왔다. 각료 즉 정치인들은 잠시 왔다 가는 ‘손님’ 일 뿐 일본 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관료 집단이었다. 이러한 관료 주도 정치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한국 정치 역시 정치 주도권이 국회에서 행정부 즉 관료로 급격하게 기울어진 양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적 합의 과정을 비효율로 치부한다. 그리고 심지어 국정 운영의 파트너인 여당조차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등 단순히 법안 통과를 거수기로 전락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그 어느 때 보다 팽배해 있다. 국정 운영에서 정치인들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며, 국민들은 무기력한 정치인을 비난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난이 현재 타당성이 있을지라도 '정치인 무용론' 과 같은 회의론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정치인은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이며 비록 완전하지 않더라도 기업인, 관료 등에 비교하면 국정 운영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의 <행정의 공개성과 정치 지도자 선출 외>는 이러한 정치인들을 위해 변론서이다. 이 책에서 정치인들의 변론하기 위한 핵심 논리는 정치의 핵심을 구성하는 '정치인'과 '관료'에 대한 비교이다. 이러한 양자의 비교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정치인과 관료를 서로 분리될 수 없을 만큼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 자아의 정체성을 확인하듯 정치의 본질은 관료의 비교를 통해 보다 명확해 지는 것이다.
관료제 기계
막스 베버의 <행정의 공개성과 정치 지도자 선출 외>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독일 정치 비평서이다. 이 책은 20세기 초 독일 의회와 다른 국가들의 정치 사례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 역사적 맥락을 알지 못하고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정치를 불신하고 정책 신속성을 강조하는 비스마르크, 재상, 군주에 이끌리는 무기력한 정당, 정치가를 대신하여 정책을 수행하는 관료의 모습은 현재 한국 정치 상황과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행정의 공개성과 정치 지도자 선출 외>는 20세기 초 유럽의 정치라는 특수성을 다루면서도 민주주의, 정당, 관료 등 같은 보편적 정치 원리를 담고 있다.
관료제란 무엇인가?
막스 베버에 따르면 관료제는 공식적인 채용, 봉급, 연금, 승진, 전문 훈련과 분업, 고정된 관할 영역, 문서에 의한 절차, 서열에 따른 하위직과 상급직에 의거하는 공무원제의 발전으로 특징지을 수 있으며 자본주의와 함께 국가 현대화의 명백한 척도라고 한다(Max Weber, 15쪽). 또한 관료제를 생명력 없는 머신에 비유하기도 했다. 머신이란 인간을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강요하고 인간의 일상적 노동 생활을 압도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을 지닌다(Max Weber). 이와 같이 관료제 기계는 합리성과 전문성에서 어떠한 지배 구조보다 우수하며 사회가 점점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 확대 된다. 심지어 저자는 현대 국가에서 실질적인 지배권은 필연적으로 그리고 불가피하게 관료의 손아귀에 있다고 단언하기까지 한다(15쪽).
정치 VS 관료
관료제는 일반적으로 매우 우수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베버는 관료제가 정치 문제를 다룰 때는 항상 완전히 실패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관료제는 왜 정치 문제를 다룰 수 없는 것일까? 우선 개인주의 관점에서 관료제는 아마도 언젠가 인간을 무기력하게 강제적으로 복종시키게 될 미래의 예속의 굴레를 만들어낼 만큼 치명성을 내재하고 있다 (Max Weber).
또한 들뢰즈의 주장처럼 관료제 기계는 국가, 국민과 같은 유기체적 존재의 공존과 상관없이 자기보존과 생성의 욕망으로 질주해버리다. 관료조직은 행정의 분업 기술, 전문 지식, 그리고 조직의 근무 지식을 통해 자신의 조직을 철저하게 보호한다. 또한 ‘근무 기밀’ 이라는 악명높은 무기를 사용해 어떠한 집단의 통제도 거부하는 한편 자격시험을 통한 정당성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권력을 획득한 사람들에 대해 분노한다(Max Weber).
이러한 배타적인 관료조직의 전형적인 한국의 사례는 ‘모피아(Mofia)’를 들 수 있다. 모피아는 재무부 출신 인사를 지칭하는 말로 마피아와 합성어이다. 이들은 정계, 금융계 등으로 진출해 산하 기관들을 장악하며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주면서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19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래 여러번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며 많은 정치인들이 출현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재무부 관료 출신들은 IMF, 미국 금융위기와 같은 치명적 실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정 운영의 주도 세력으로 건재하다.
베버는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 전반적인 관료화가 압도적으로 진행되는 상화에서 어떻게 해야 ‘개인’ 활동의 자유를 끄집어낼 수 있는가?
- 관료층의 압도적 권력을 절제시키고 효과적으로 통제할 만한 권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어떻게 보증할 수 있는가? (32쪽)
정치의 본질은 책임감
막스 베버는 <행정의 공개성과 정치 지도자 선출 외>를 통해 다양한 논의를 전개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치는 결국 정치인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그렇다면 베버는 왜 국민들 불신하는 정치인을 지지하는가? 또한 정치인들은 과연 관료들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그에 대한 답변은 ‘책임감’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에 대한 추구 또는 참여이다. 정치인들은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진다. 그들은 선거 공약 등을 통해 국민들과 약속하고 이후 약속이 지키지 못할 때는 낙선으로 책임을 진다. 이와 같이 권력 투쟁에서 비롯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감은 정치인의 기본 요건이다.
그러나 관료들은 어떠한 책임도 요구되지 않는다. 그들은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이 맡은 일만 충실히 하면 그만이다. 설사 큰 과실을 범해 행정에서 물러난다고 하더라도 오뚝이처럼 다시 부활하기도 한다. 작년 금융위기 당시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던 강만주 전 재경부 장관. 강만주 전 장관은 경제 위기의 책임으로 잠시 행정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올해 다시 대통령실 경제특별보좌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윤증현 기획 재정부 장관 역시 마찬가지이다. 윤장관은 강만수 경제특별보좌관과 함께 IMF 사태의 책임자였지만 참여정부 금융감독원 원장에 이어 현재 재경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했다.
책임 의식이 부재한 사회
국가의 상위 권력은 입법부 즉 정치인이다. 정치인들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어 대표성을 가진다. 이러한 국민과 정치인의 대의적 계약의 핵심은 ‘책임’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정치 는 심각한 책임의식 부재 상태에 있다. 정치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세종시 법안은 아무런 절차도 없이 행정부에 의해 전면 백지화되었다. 백지 예산으로 추진되는 4대강 사업의 경우도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은 자신의 책임을 방기한 채 행정부의 독단에 휘둘리는 형국이다.
이와 같이 행정 즉 관료에 압도되어 정치가 설자리가 없어진다면 정치가 소멸한 그 자리에는 관료들의 향연으로만 가득할 것이다. 막스 베버가 지적하듯 관료제 테제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은 결국은 정치일 수밖에 없으며 특히 민주주의를 기반한 의회정치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저자의 고찰이야 말로 100년 전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독일과 너무나도 닮아있는 현재 한국에게 던저주는 가장 큰 교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