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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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봄과 여름 대한민국은 촛불 열기로 가득했다. 촛불집회는 여중생으로 대표되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시민운동에 큰 획을 그었으며, 그들의 정신은 집회 내내 불려졌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의 가사에 집약되었다. 

 이와 같이 촛불 집회는 평소에 민주주의에 무관심 했던 많은 시민들에게 민주공화국과 헌법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즉, 1920년대 식민지라는 우울한 시대 상황이 ‘술 권하는 사회’를 만들었다면 현재의 모순적인 시대 상황은 시민들에게 ‘헌법 권하는 사회’를 만든 것이다. ‘헌법 권하는 사회’는 비단 시민들만의 몫만은 아니다. 지식인들은 촛불집회를 바라보면서 대한민국과 헌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기 시작했고 <후불제 민주주의> 저자 유시민씨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존재(sein)가 아닌 당위(Sollen)로서의 헌법

 저자의 문제의식은 책의 제목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모든 것을 집약되어 있다. 그는 ‘우리 국민이 제헌헌법이 규정한 민주적 기본 질서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다 지불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은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손에 넣은 일종의 ‘후불제 헌법’ 이었고, 그 ‘후불제 헌법’ 이 규정한 민주주의 역시 나중에라도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하는 ‘후불제 민주주의’ 였다.’ 라고 말한다.

 <후불제 민주주의> 용어는 언제든지 퇴행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취약성과 ‘당위(Sollen)'로서의 헌법의 특성을 명확하게 담고 있다. 그러나 용어 정의에 관한 탁월한 직관력에 비해 이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 1부 내용은 상대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하다. 1부는 헌법의 기본권을 통해 사회가 지향해야할 가치를 고찰하고 있다. 헌법의 당위성 접근은 현 시대 상황에서 적절한 문제 제기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풀어나가는 방법적인 측면은 너무나도 평이하다. 저자가 비록 지식소매상을 자처하지만 책 제목이 주는 풍부한 함의를 본론에서 담아내지 못한 것은 매력적인 글을 쓰는데 있어서는 명백한 실패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권력의 속살 드러내기  

  2부 <권력의 실재>에서는 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의 정치면 기사처럼 화석화된 죽은 정치이야기가 아닌 정치권력 간의 충돌과 타협의 과정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의 우월적인 위치를 솔직히 인정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최고 자리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 앞에서는 그들 역시 나약한 개인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즉, 정치는 다양한 권력 계층의 투쟁과 타협으로 이루어진 산물이며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결코 세상을 움직일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유시민 전 의원의 소명에 대한 반론

 저자가 스스로 밝혔듯이 책의 후반부는 참여 정부에 가해졌던 터무니없는 비판에 대한 소명에 할애한다. 분명히 참여정부에 대한 진보, 보수에 대한 비판은 지나친 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유시민 전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을 계승하여 향후 정치에 참여할 것이라면 참여 정부 시절에 논란이 되었던 정치적 사안에 대해 보다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는 것이 옳다. 어차피 참여정부가 사회자유주의 노선 중도를 표방한 이상 진보, 보수 양 측에서 비판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정치 노선을 진보와 보수 사이의 넓은 스펙트럼 중에서 과연 어느 지점에 둘 것이냐는 점이다.  

  책에서 노무현과 이명박은 똑 같은 신자유주의라고 주장하는 진보 측 비판에 상당한 거부반응을 보인다. 이 비판은 모든 진실을 담고 있지 않지만 분명히 현재의 사회 체제의 큰 함의를 담고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한국 사회체제’ 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 크게 ‘신자유주의가 가속화되는 97년 체제’ 와 ‘신보수체제가 수립되는 08년 체제’로 양분되었다. 결국 진보의 비판은 97년 체제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유시민 전 의원은 08년 체제와 함께 97년 체제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후불제 민주주의>의 소명(疏明)은 단순한 자기 위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과거를 넘어서 앞으로의 정치 미래를 위한 치열한 자기반성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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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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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체제의 마지막 증언자 '장기수' 

 

6.15 남북 공동 선언 그리고 이후 일련의 사건들... 금강산 관광, 남북 경협
그렇게 높기만 했던 분단의 장벽은 이렇게 서서히 균열이 나고 있다.
그래서 금강산에 수학여행을 가는 어린 학생들에게 분단의 고통과 아픔은
어쩌면 교과서의 기록된 화석화된 역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급변해가는 분단의 현실에서 
작가 조정래는 여전히 분단 시대 비극의 끝자락에 머물고 있는 장기수를 통해
분단체제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려 한다. 

 

 이데올로기.. 결국 인간의 문제  
 

 주인공 윤혁은 30여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복역한 장기수이다. 그에게 있어 사회주의 이념은 혹독한 고문과 폭력 그리고 독방살이의 고통스러운 고통을 30년간 견디기 만든 절대적 믿음이었다. 그러나 그가 감옥을 나서게 되면서 접하게 된 것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이었다.
   30년이라는 정지된 시간 속에 살아왔던 그로서는 초기의 순수와 열정이 넘치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왜 갑자기 부패하고 타락되었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혼란감을 느끼면서 사회주의 몰락의 원인을 찾던 중, 그는 다음과 같은 신문기사를 보게 된다. ‘마르크스주의란 기본적으로 밥 먹는 철학인데, 그것은 실현시키지 못해 결국은 스스로 몰락하고 말았다.’ 여기서 기사는 이념과 사상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역사, 그것은 인간의 삶이었다. 이데올로기, 그것도 인간의 생산물이었다. 그것들은 인간이 없으면 존재할 수도 없고, 인간에게만 필요한 것들이다.’라고 생각에 이르게 된다. 결국 그는 사회주의의 몰락의 원인을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인 인간의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념형 인간의 종언 그리고 인간 연습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가지고 있는 윤혁은 과연 이념의 시대를 고하고 새로운 시대 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조정래 작가는 주인공의 거듭나기를 아이러닉하게도 다시 인간의 문제로 귀결시킨다. 
  윤혁은 사회 참관을 하던 도중 우연히 고아인 경희, 기준이라는 두 남매를 돕게 된다. 이후 이것이 인연이 되어 윤혁과 두 자매는 따뜻한 인간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에게 있어 아이들은 새싹이 파픗파릇 돋는 너른 초원이며 눈비시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었다. 
  이 후 윤혁은 자신의 수기를 읽고 호감을 가지게 된 최선숙 보육원 원장으로부터 초대를 받게 된다. 그래서 그는 두 자매와 함께 ‘인간의 꽃밭’인 보육원으로 가게 된다. 결국 새로운 공동체에 정착하게 된 윤혁은 책의 제목처럼 이전과의 삶과는 다른 방향으로 ‘인간  연습’을 시작하게 된다.

   

 

 

     

작가의 말 중에서

  인간은 기나긴 세월에 걸쳐서 그 무엇인가를 모색하고 시도해서, 
  더러 성공도 하고, 많이는 실패하면서 또 새롭게 모색하고 시도하고.... 
  그 끝없는 되풀이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한 '연습'이 아닐까 싶다. 
  그 고단한 반복을 끊임없이 계속하는 것,  

  그것이 인간 특유의 아름다움인지도 모른다. 

  그 '큰 연습' 한 가지에 대한 오래 생각해오다가 이 작품을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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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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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FTA는 그 어느 때보다 진보와 보수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안이었습니다. 갈등의 중심은 FTA 이 후의 결과였는데, 양 측은 협정의 실효성에 대한 검증은 하지 못한 채, 반복적으로 추상적인 형태의 주장만 나열하기에 급급했습니다. 특히 정책을 검증해야 할 경제학자들조차도 신자유주의 논리에 일방적으로 매몰된 채 장밋빛 전망만을 내놓았을 뿐이죠.      이와 같이 상황에서 장하준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을 통해 세계화 논쟁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데, 특히 그가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논쟁을 넘어서서 순수 경제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 진영 모두에게 설득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신화 깨트리기 
  그렇다면 과연 장하준 교수는 점점 복합적이고 다층화되는 세계 경제의 미래를 어떻게 예측했을까요? 그것에 대한 해법은 다름이 아닌 바로 ‘역사’입니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통해 현재에 직면한 문제를 바르게 이해할 수 틀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장하준 교수는 그 동안 자본주의 역사에서 망각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발굴하여 그것을 현재의 세계화의 상황들과 비교합니다. 그는 이것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도 당연하게 진실로 받아들였던 신자유주의라는 신화를 하나씩 하나씩 깨트려 나가기 시작하죠.

   ‘자유 무역이 언제나 정답인가?’   ‘민간기업은 좋고, 공기업은 나쁜가?’ 
    심지어  ‘재정 건전성이 반드시 좋은가?’   ‘아이디어 ’차용‘은 반드시 나쁜가?’

그는 다음과 같은 화두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곧 이어 아니라고 답합니다. 심지어 이것은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들들어, 장하준 교수는 보호무역과 자유무역을 시행했던 개방도상국의  GNP 증가율을 다음과 같이  보여줍니다. 

   보호무역을 실시했던 1960-1970년대의 개발도상국들은 1인단 국민소득이
  연간 3%나 증가한다. 이것을 아지트 싱 교수에 의하면 '제 3세계의 산업혁명'이라고
  불릴만큼 놀아운 결과였다. 그러나 개발도상국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행에 옮긴 
  1980년대 이후는 1960-70년대에 기록했던 성장률의 절반 정동의 속도(1.7%)로  

 성장한 다.

이러한 경제적 수치를 보는 우리는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 과연 계속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지해야만 하는 것일까?'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주는 당혹감 
 이 책은 신자유주의 논리를 극복한다는 점에서 보수진영에게 당혹감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진보진영에게도 역시 불편함을 제공한 다는 것이죠. 
장하준 교수는 경제를 발전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국가 개입을 중요시 합니다. 이러한 국가 개입은 우리들에게 낮선것 만은 아닙니다. 우리 나라는 이 정책을  급속하게 경제가 발전했던 1960-70년대에 이미 시행한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권이 무시되면서 자행됐던 국가 개입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또한 그는 역사를 통해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제 발전이 선행될 수 밖에 없다고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경제발전을 위해 잠시동안의 민주주의 퇴보를 지켜봐야 할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결국 '역사'안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역사는 유사하게 반복적으로 나타나지만 동일하게는 반복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반복되는 부정적인  상황들은 극복하고, 반복되는 긍정적인 상황들은 발전시켜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우리에게 던져주는 진정한 의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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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3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책세상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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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서 부쩍 ‘민주주의 위기’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민주주의 위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유의 위기이다. 민주주의 근본 원리는 자유가 보장되었을 때 비로소 올바르게 작동 하기 때문이다. 결국 현 상황의 민주주의 억압기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유의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는 것다.   그렇다면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의 정의는 이미 민주주의가 태동되던 시기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근대 유럽 사상가들은 자유에 대한 풍부한 논의를 전개했는데 그 중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15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함의를 제공한다.  

    

   <자유론>은 1장에서 ‘사회가 개인을 상대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성질과 한계’의 문제의식을 다룬다. 그리고 2장 <생각과 토론의 자유>에서 본격적으로 자유의 절대성을 설파한다. 우선 밀은 자유의 억압을 악과 동일시할 만큼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특히 어떤 생각을 억압한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런 행위가 현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의 인류에까지 강도질을 하는 것과 같다(p42).’

 이어 밀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침묵을 강요당하는 의견이 ‘옳은 경우’와 ‘틀린 경우’ 두 가지로 나누어 논지를 전개한다(침묵을 강요하는 의견 A, 강요당하는 의견 B).
 첫째, 의견 자체는 절대성을 담보하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침묵을 강요당하는 의견(B) 역시 진실일 가능성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강요한다면(A) 그것은 스스로를 완전하다고(infallibility) 전제하는 독선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자유론>의 핵심이며 가장 감동적인 고찰로서 강요당하는 의견(B)이 정말 오류가 있고 잘못되었을 때의 가정이다. 밀은 설사 이러한 경우에도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잘못된 의견일지라도 그 의견 자체가 억압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를 통해 진리를 보다 분명히 이해하고 깊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의 전제: 진리의 상대성
결국 자유가 존재해야 하는 근본적인 전제는 ‘진리의 상대성’ 이다. 대립되는 의견은 결코 ‘옳음’ 과 ‘잘못’ 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로 나누어 질 수 없으며 오히려 양 쪽의 인식 모두에서 어느 정도의 진리를 담고 있다. 특히 두 가지 상반된 인식 틀은 각기 상대방이 지닌 한계 때문에 존재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바로 상대편이 존재하기 때문에 양 쪽 모두가 이성과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p92).  

 표현, 집회 등의 자유는 궁극적인 진실을 다가서기 위해 진실의 단편을 추가하는 과정이다. 이와 같이 진리의 상대성을 기반으로 한 자유의 중요성은 현재에 많은 의미를 가진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발생한 국민들의 반발을 국정 운영의 비효율성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일제고사를 반대하다 교단에서 쫓겨난 선생님의 주장에는 서열화와 과열경쟁의 문제 제기가, 그리고 용산 참사 희생자의 절규 속에는 일방적 개발주의가 빚어낸 열악한 세입자의 삶이 담겨 있다.   정부는 존 스튜어트의 밀의 <자유론>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더 나아가 국가는 완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부는 솔직히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반대자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자. 그것만이 많은 시민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될 것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어떤 한 의견이 사회에서 공격받을 때 이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면,  그것은 그 주장이 옳아서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 의견이 비도덕적이고 불경스럽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게는 절대로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전제하는 태도가 비판을 덜 받거나 덜 위험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무엇보다도 더 치명적인 해독을 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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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의 공개성과 정치 지도자 선출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14
막스 베버 지음, 이남석 옮김 / 책세상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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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한 변명
 지난 8월 일본의 54년 체제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제 1야당인 민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 석을 확보함으로써 54년 만에 첫 번째 정권 교체를 한 것이다. 민주당은 변화를 선택한 국민들의 뜻을 반영하여 여러 가지 공약을 내놓았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공약은 ‘관료 제도의 개혁’이다. 일본의 관료사회는 반세기 이상 사실상 ‘무소불위의 행정’을 휘둘러왔다. 각료 즉 정치인들은 잠시 왔다 가는 ‘손님’ 일 뿐 일본 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관료 집단이었다.  이러한 관료 주도 정치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한국 정치 역시 정치 주도권이 국회에서 행정부 즉 관료로 급격하게 기울어진 양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적 합의 과정을 비효율로 치부한다. 그리고 심지어 국정 운영의 파트너인 여당조차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등  단순히 법안 통과를 거수기로 전락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그 어느 때 보다 팽배해 있다. 국정 운영에서 정치인들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며, 국민들은 무기력한 정치인을 비난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난이 현재 타당성이 있을지라도 '정치인 무용론' 과 같은 회의론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정치인은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이며 비록 완전하지 않더라도  기업인, 관료 등에 비교하면 국정 운영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의 <행정의 공개성과 정치 지도자 선출 외>는 이러한 정치인들을 위해 변론서이다. 이 책에서 정치인들의 변론하기 위한 핵심 논리는 정치의 핵심을 구성하는 '정치인'과 '관료'에 대한 비교이다. 이러한 양자의 비교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정치인과 관료를 서로 분리될 수 없을 만큼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 자아의 정체성을 확인하듯 정치의 본질은 관료의 비교를 통해 보다 명확해 지는 것이다.

 

 관료제 기계 
  막스 베버의 <행정의 공개성과 정치 지도자 선출 외>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독일 정치 비평서이다. 이 책은 20세기 초 독일 의회와 다른 국가들의 정치 사례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 역사적 맥락을 알지 못하고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정치를 불신하고 정책 신속성을 강조하는 비스마르크, 재상, 군주에 이끌리는 무기력한 정당, 정치가를 대신하여 정책을 수행하는 관료의 모습은 현재 한국 정치 상황과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행정의 공개성과 정치 지도자 선출 외>는 20세기 초 유럽의 정치라는 특수성을 다루면서도 민주주의, 정당, 관료 등 같은 보편적 정치 원리를 담고 있다.
 

관료제란 무엇인가? 
 막스 베버에 따르면 관료제는 공식적인 채용, 봉급, 연금, 승진, 전문 훈련과 분업, 고정된 관할 영역, 문서에 의한 절차, 서열에 따른 하위직과 상급직에 의거하는 공무원제의 발전으로 특징지을 수 있으며 자본주의와 함께 국가 현대화의 명백한 척도라고 한다(Max Weber, 15쪽). 또한 관료제를 생명력 없는 머신에 비유하기도 했다. 머신이란 인간을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강요하고 인간의 일상적 노동 생활을 압도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을 지닌다(Max Weber). 이와 같이 관료제 기계는 합리성과 전문성에서 어떠한 지배 구조보다 우수하며 사회가 점점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 확대 된다. 심지어 저자는 현대 국가에서 실질적인 지배권은 필연적으로 그리고 불가피하게 관료의 손아귀에 있다고 단언하기까지 한다(15쪽).

 

정치 VS 관료
  관료제는 일반적으로 매우 우수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베버는 관료제가 정치 문제를 다룰 때는 항상 완전히 실패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관료제는 왜 정치 문제를 다룰 수 없는 것일까? 우선 개인주의 관점에서 관료제는 아마도 언젠가 인간을 무기력하게 강제적으로 복종시키게 될 미래의 예속의 굴레를 만들어낼 만큼 치명성을 내재하고 있다 (Max Weber). 
  또한 들뢰즈의 주장처럼 관료제 기계는 국가, 국민과 같은 유기체적 존재의 공존과 상관없이 자기보존과 생성의 욕망으로 질주해버리다. 관료조직은 행정의 분업 기술, 전문 지식, 그리고 조직의 근무 지식을 통해 자신의 조직을 철저하게 보호한다. 또한 ‘근무 기밀’ 이라는 악명높은 무기를 사용해 어떠한 집단의 통제도 거부하는 한편 자격시험을 통한 정당성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권력을 획득한 사람들에 대해 분노한다(Max Weber).  

  이러한 배타적인 관료조직의 전형적인 한국의 사례는 ‘모피아(Mofia)’를 들 수 있다. 모피아는 재무부 출신 인사를 지칭하는 말로 마피아와 합성어이다. 이들은 정계, 금융계 등으로 진출해 산하 기관들을 장악하며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주면서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19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래 여러번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며 많은 정치인들이 출현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재무부 관료 출신들은 IMF, 미국 금융위기와 같은 치명적 실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정 운영의 주도 세력으로 건재하다.  

 

 베버는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 전반적인 관료화가 압도적으로 진행되는 상화에서 어떻게 해야 ‘개인’ 활동의 자유를 끄집어낼 수 있는가?
- 관료층의 압도적 권력을 절제시키고 효과적으로 통제할 만한 권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어떻게 보증할 수 있는가? (32쪽) 

 

정치의 본질은 책임감 
 막스 베버는 <행정의 공개성과 정치 지도자 선출 외>를 통해 다양한 논의를 전개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치는 결국 정치인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그렇다면 베버는 왜 국민들 불신하는 정치인을 지지하는가? 또한 정치인들은 과연 관료들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그에 대한 답변은 ‘책임감’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에 대한 추구 또는 참여이다. 정치인들은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진다. 그들은 선거 공약 등을 통해 국민들과 약속하고 이후 약속이 지키지 못할 때는 낙선으로 책임을 진다. 이와 같이 권력 투쟁에서 비롯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감은 정치인의 기본 요건이다.  

   그러나 관료들은 어떠한 책임도 요구되지 않는다. 그들은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이 맡은 일만 충실히 하면 그만이다. 설사 큰 과실을 범해 행정에서 물러난다고 하더라도 오뚝이처럼 다시 부활하기도 한다. 작년 금융위기 당시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던 강만주 전 재경부 장관. 강만주 전 장관은 경제 위기의 책임으로 잠시 행정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올해 다시 대통령실 경제특별보좌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윤증현 기획 재정부 장관 역시 마찬가지이다. 윤장관은 강만수 경제특별보좌관과 함께 IMF 사태의 책임자였지만 참여정부 금융감독원 원장에 이어 현재 재경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했다. 

 

책임 의식이 부재한 사회
 국가의 상위 권력은 입법부 즉 정치인이다. 정치인들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어 대표성을 가진다. 이러한 국민과 정치인의 대의적 계약의 핵심은 ‘책임’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정치 는 심각한 책임의식 부재 상태에 있다. 정치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세종시 법안은 아무런 절차도 없이 행정부에 의해 전면 백지화되었다. 백지 예산으로 추진되는 4대강 사업의 경우도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은 자신의 책임을 방기한 채 행정부의 독단에 휘둘리는 형국이다.
 이와 같이 행정 즉 관료에 압도되어 정치가 설자리가 없어진다면 정치가 소멸한 그 자리에는 관료들의 향연으로만 가득할 것이다. 막스 베버가 지적하듯 관료제 테제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은 결국은 정치일 수밖에 없으며 특히 민주주의를 기반한 의회정치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저자의 고찰이야 말로  100년 전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독일과 너무나도 닮아있는 현재 한국에게 던저주는 가장 큰 교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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