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
곽재식 지음 / 엘릭시르 / 2017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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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요즘은 도서관에서 빌리고 싶은 책을 발견하는 일도 드물고, 재밌겠다 싶어 빌린 책들도 기대에 못 미치는 일이 많아 약간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기분이 든다.
재밌는 게 나타나지 않으면 절대 깨지지 않을 독서의 매너리즘이다.

나는 무서운 이야기를 아주 많이, 매우 싫어한다.
그러니까 장르로 따지자면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닌 공포, 호러 쪽 이야기는 거들떠도 안 본다.
어렸을 때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쭉 그럴 텐데 이 ‘무서운’이라는 단어를 붙인 책은 묘하게 끌렸다.
아마도 그런 이야기라면 바로 덮어버렸을 나 같은 사람에게 아주 적합한 이야기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문제편, 풀이편, 해답편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한규동이 이인선의 회사에 면접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끈질긴 구직 끝에 겨우 맛본 면접 통보에 달려 온 한규동 앞에는 예전 학원 건물이었다는 증거로 수많은 책상과 의자가 늘어져 있고, 이인선이 먹다 남긴 것으로 보이는 탕수육 같은 쓰레기들이 너저분하게 놓여진 회의실에서 면접은 시작된다.
불합격과 합격을 동시에 바라게 된 한규동에게 이인선은 자신이 아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 주변에서 기가 막히게 돈을 번 이야기, 바람 난 이야기 중 가장 길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라 한다.
한규동은 전에 다닌 회사 이야기를 하며 돈 번 이야기를 해야지 생각하다가 3가지라 해놓고 까먹었다 뒤늦게 대충 덧붙인 바람 난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또 얼마 전 헤어진 전 여자친구 이야기를 할까도 했지만 이내 아무 것도 아닌 무서운 이야기를 하기로 선택하고 이인선에게 말한다.
그렇게 그가 아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1940년대 한 의류 공장의 사장 임만섭은 사람들이 일본을 칭송하며 돈을 쉽게 버는 걸 보고 돈으로 전쟁을 치하하는 글을 사 일본군에게 낭송해 그들의 납품을 담당하게 되었다.
주로 자폭하는 군인들이 마지막으로 쓰는 두건이나 휘장을 제작하게 된 임만섭의 공장에 십대의 한 여자 직원이 들어와 일을 하게 된다.
그렇게 수많은 물자를 찍어대며 일을 하던 중 계속해서 생산량은 늘어만 가고 직원들이 한계를 맞이 하자 임만섭은 더 많이 일하는 직원에게 상금을 건다.
그렇게 일하던 중 한 성실한 직원이 사고를 당하고 부상을 입자 임만섭은 슬퍼하며 다른 방법으로 직원들에게 각성제를 투여하기로 한다.
주사를 맞은 직원들의 능률이 오르고 계속해서 생산량은 늘어만 가는 와중에 임만섭은 더 큰 세상을 경험하라고 일본 국적으로 미국에 보낸 자신의 아들이 수용소에 갇혔다는 편지를 받고 크게 절망한다.
아들이 죽었다 생각한 임만섭은 낙심하며 전쟁을 열렬히 지지하게 되었다.
치사량에 준하는 약물 투입으로 점차 사망하는 직원들이 발생하고, 그들은 죽기 직전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다 호흡이 마비되며 사망에 이르는 공통점을 보인다.
그리고 이름은 알려지지 않는 그 여자 직원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에게 만약 자신이 환호성을 지르게 되면 자신을 깨우려 하지 말고 다량의 약을 주입해달라 부탁한다.
임만섭이 전쟁이고 뭐고 반쯤 미쳐 물건이 쌓이도록 생산량에 집착할 때 그 직원이 마침내 환호성을 질렀고 직원들은 모두 그녀에게 다가가 주사기로 약물을 주입했다.
피를 흘리며 점차 떨리는 몸으로 그녀는 한 번 더 부탁했고 그렇게 두 번의 약을 주입한 그녀는 결국 살아남았으며, 그 결과 인간의 사고를 초월해 사람이 알지 못했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전해진다.
일본이 패망하자 임만섭은 먹을 것을 들고 도망가기 위해 음식물 창고로 가, 되는 대로 음식물을 손에 쥐었고 그 모습을 본 그녀는 임만섭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어차피 죽을 것이니 죽기 전 며칠 간이라도 보람차게 보내자, 그 말을 들은 임만섭은 그것이 자신에게만 주어진 기회라 생각하고 빈 건물에 여러 가지 것들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공장의 불을 끄고 모든 사람들이 빈 건물로 들어 가 문을 잠궜고 아무도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죽은 줄 알았던 임만섭의 아들이 미군의 탱크를 타고 잠긴 문을 열었을 때 그들의 눈 앞에는 거꾸로 매달린 직원을 중심으로 그녀의 머리카락과 함께 길게 늘어진 검은 실과 그것을 입에 물고 있는 한데 뭉쳐진 사람들의 기괴한 형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후로 아들은 번창하며 공장을 넓혀갔지만 모든 흔적을 지운 그 건물만은 사용하기를 거부했다.
그의 큰 딸이 공장을 물려받고 그 직원들에게 알음알음 퍼져있던 소문이 구체화된 건 키 큰 여자와 대머리 남자가 우연히 그 건물에서 그 이야기를 한 순간 거꾸로 매달린 귀신을 보았던 일 때문이었다.
그렇게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모두 무언가를 목격하며 도망가기에 바빴고 이야기에 문제가 있다는 그 진상을 밝혀낸 건 한 방글라데시 유학생이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증거를 발견하게 되는 패턴을 분석한 유학생은 그것을 자신의 모국어로 번역해 들었을 때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한국어로 이 이야기는 사람에게 정신 착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놓았다는 이야기.

이야기가 진짜 같아 좋다는 이인선은 이 이야기를 팔자며 한규동에게 합격했으니 내일 나오라는 말을 전한다.
고민하던 한규동은 결국 다음날 출근하고 이인선을 찾아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가 민물고기를 사는 걸 구경한 다음 이인선이 찾아 낸 그 공장에 따라간다.
기자는 아니지만 취재를 해 신문사에 아이템을 파는 일을 하는 회사인 걸 알게 되고 가장 잘 팔리는 건 몸매 노출이지만 그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덤비기에 자신들은 무서운 이야기, 돈 번 이야기, 바람 난 이야기를 다룬다는 말을 듣는다.
그렇게 공장에서 민물고기의 사용처도 알게 되고 실존하는 그 건물에도 들어가 보게 된 둘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 거꾸로 매달린 웃는 얼굴을 목격하고 부리나케 도망친다.
겁먹은 한규동을 달래 이야기의 출처라는 전 여자친구 장혜경도 만나 이야기를 듣지만 여전히 그것의 정체는 알 수 없는데, 다시 확인하기 위해 들른 공장에는 이인선의 전 남자친구이자 그녀에게 민물고기에 대해 가르침을 청하는 김 기자의 상사 오 차장이 서 있었다.
임만섭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으러 왔다는 오 차장과 김 기자를 피해 건너편 산으로 온 그들은 그곳에서 무당들을 만나고 한규동은 더욱 겁에 질린다.
조용해진 틈을 타 다시 들어간 건물 안에는 탐사 장비를 가진 오 차장이 아직 있었고 티격태격하는 그들 앞에 다시 거꾸로 된 얼굴이 나타난다.

다음 날 다시 공장으로 향한 그들은 방글라데시 말을 하는 인턴 학생을 앞세워 공장 직원들을 탐문하며 예전에 한 직원이 그 귀신이 나오는 시간을 기가 막히게 잘 알아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다시 얼굴을 내민 오 차장 뒤로 키 큰 여자와 대머리 남자를 발견한 이인선은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한규동 대신 오 차장과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만 키 큰 여자와 대머리 남자는 놓치고 만다.
대신 탐사 장비로 벽면을 쏘아보던 이인선은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 자연스레 오 차장과 거래하며 보수를 정하던 중 다시 거꾸로 된 얼굴이 등장한다.
눈도 못 뜨는 한규동에게 입모양을 가르쳐주며 한 번만 다시 보라는 이인선의 말에 한규동은 겨우 눈을 떠 확인하고 이인선은 모두에게 그 정체를 털어놓는다.

귀신처럼 보이는, 그런 이야기를 3분의 2가 되도록 진행시키는 데도 나는 전혀 겁에 질리지 않을 수 있었다.
다시 보니 장면들이 섬뜩한데 읽을 때는 한규동이 대신 놀라서인지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심지어 그걸 목격하고 도망치는 장면인데 웃음도 난다.
진짜 재밌는 책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은 환상적인 내용을 다룬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요청을 받고 쓴 이야기라고 했다.
계약금을 건넨 처음 회사는 소설 작업을 중단해버렸고 스스로 홍보해 다른 회사와 계약했지만 계속해서 미뤄져 이 소설은 저주받은 원고라 칭한다 했다.
이미 발매되었으니 유통기한이 지난 저주가 되겠다.
첫 회사는 10편을 기획했고 그것을 작가에게 맡긴다 했다는데 이런 10개의 이야기라니, 왜 회사는 망해버린 걸까.
무서운데 재밌는 감정을 생전 처음 느꼈다.
이래서 공포 영화를 돈 주고 보러가는구나 싶다가도 다시 책을 읽을 마음까진 생기지 않는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시도는 그럼에도 성공한 듯해 다행이다.
잠들 수 있으니 진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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