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주인공은 작가이자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다.어느 날 그녀는 신문에서 한 소설의 작가를 찾는 광고를 발견한다.몇 줄의 글을 읽어나가던 중 그녀는 그 소설이 예전 익명으로 썼던 자신의 첫 소설 난파선 임을 알아채고 신문사에 전화해 자신이 허가한 적 없으니 더 이상 글을 싣지 말라 말한다.그리고 얼마 뒤 한 여성이 전화를 걸어와 평소 남편이 그 글을 자신이 쓴 소설이라고 말했으며 6개월 전 실종되었다고 도와달라 청한다.약속 장소에서 자신을 진이라 밝힌 여성은 남편이 남기고 갔다는 이유상이라는 이름이 찍힌 난파선 책과 그의 일기를 내어놓는다.그 일기에는 이유미라는 여성이 태어나 자라온 순간들과 남의 학력을 훔쳐 피아니스트로, 교수로 지내다 모든 걸 들키고 이안나로 새로운 인생을 살며 의사라는 직업을 사칭하게 되었던 것, 여러 번의 사랑과 결혼을 거치며 모든 것을 잃은 그녀가 이유상이라는 남자 행세를 하며 한 기도원에 들어와 진이라는 여성을 만나고 결혼하게 된 모든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끝까지 주인공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는다.그녀는 소설가이지만 오래 전 소설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몇 년 간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했으며 자신이 저지른 외도로 인해 남편은 영국으로 떠났고 그녀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자마자 이혼을 선언하며 집을 나간 상태다.자신의 이야기와 이유미의 이야기를 번갈아 내어놓으며 이유미를 쫓는 한편 그녀는 자신이 간과했던 것들과 마주한다.이유미라는 존재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렇다고 인생의 무언가가 바뀌지는 않는다.처음 소설을 썼을 때만 해도 인생을 뒤바꿔놓을 것만 같던 글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다.거짓으로 이유상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주인공의 남편이 영국에서 돌아오며 모든 것이 밝혀지고 난 후에도 그녀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충격이나 의문같은 게 있었을까, 시종일관 담담한 태도를 잃지 않는 글 속에서 그녀는 감상만을 늘어놓을 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그리하여 이용당했을 뿐이며 종적을 감추어야 했을, 진실과 거짓이 섞인 이유미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결코 재단하지 않는다.결국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엠의 삶이 주는 감상에서 손을 떼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며 그녀는 홀린 듯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사라진 여자 혹은 남자에 대해서, 진실 혹은 거짓을 담은 글을.이유미의 삶은 <악녀에 대하여>와 똑같은 방식으로 진술된다.그녀 자신이 남긴 일기에 근거해 그녀의 인생에 존재했던 사람들을 만나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가능하리라 생각되지 않지만 실제로 그러했다는 그 거짓말 같은 삶이 주인공을 유혹하듯 끌어당긴다.교수는 아니었지만 선생이었던 여자, 의사는 아니었지만 구원자였던 여자, 남자는 아니었지만 남편이었던 여자.모순 같은 사실이 자꾸만 이유미라는 존재를 저 멀리 밀어내 달아나게 만든다.실로 더할 나위 없이 ‘친밀한 이방인’ 같은 존재다.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결코 가까워지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알려온다.하얀 돛의 난파선 만이 그녀를 쫓을 유일한 도구지만 누구도 그 배를 탈 수 없다.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것 같은 이야기다.모든 걸 알겠다 생각했던 시점에 네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며 유유히 걸어나가는 진실이 만들어내는 기만은 역시 작가의 몫이다.아픔마저 용인 가능한 행복처럼 느껴지게 만들던 글이 사실은 삶의 목적이 아닌 도구였으며 나의 무능력을 입증하는 단 하나의 증거라는 걸 알았다고 말하면서도 그것마저 써내려가는 것이다.이야기의 내용을 떠나 하나의 소설로서 와닿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