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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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잘못 봤나 싶어 뽑아 들었다.
`뭐 이런 완벽한 제목이 다 있어, 제길.`
이라는 식의 번역투 문장이 나오는 이유를 알게 된 느낌.

작가 소개가 재밌다.
작가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농사나 원예에 소질이 없는 사람은 공부를 해야만 하는 곳`에서 태어났단다.
<할 수 있는 만큼 해야지>
<그걸 겪어 봐야지>
<뭘 또 원해>로 이어지는 연작 장편과,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악마도 때로는 인간일 뿐>으로 이어지는 연작 장편을 발표.
어마어마한 예감이 든다.

실패한 심리 치료사 야콥 야코비 박사에게 어느 날 찾아 온 신.
신은 어느덧 자신을 초월해버린 인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며 망가져버린 상태.
신의 존재와 더불어 눈앞에 서있는 남자가 하는 말의 진위 여부를 밝히고, 그의 원론적이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기로 한 야콥은 자신의 마지막 환자가 되어버린 자칭 신, 아벨과 동행하기로 한다.
놀랍게도 신에게는 고민 뿐만 아니라 수도자 아들이 있고, 더 놀랍게도 그 아들의 부모는 성불구로 오해받는 요셉과 세 번의 이혼으로 세 명의 자녀를 둔 마리아이며, 경악스럽게도 아들 크리스티안은 아벨이 아닌, 신을 믿는다.

책은 아벨이 신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아들조차 믿지 않는 신, 아벨만이 자신이 신이라 주장할 뿐이다.
정말 세기의 마술사거나 혹은 자만에 빠진 정체성 장애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남을 사칭하길 좋아하는 그 인물이 신이고 아니고를 떠나 이야기는 달려나가며 그 과정에서 책은 어떻게든 신을 생각하게 만든다.
신의 존재를, 의미를.

애초에 나는 신과 무관한 사람이기에 신에 대해 생각할 일이 별로 없다.
신, 천국, 진화론, 사후 세계 등등 어쩌면 죽어서도 모를 일에는 꼭 이성이 앞선다.
신이 있다면 도대체 무엇을 시험하고자 함인지 도통 짐작도 못할 세상에선 책대로 고장나버린 신이 딱 맞는 상황 아닐까.
책을 정리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다 읽은 책을 바닥에 깔고 아직 읽지 못한 책을 위로 올리는 거, 샤워하러 갈 땐 까먹지 않게 꼭 양치 먼저 하는 거, 외출 준비할 땐 귀걸이는 마지막에, 가방은 늘 왼쪽에, 같은 습관들은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무의식을 바탕으로 행해지는 인간의 행동도 결국은 의지를 띠고 있는 것이며, 그 결론은 과거, 현재, 미래, 어느 시점에서건 그렇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기에, 라는 말 뒤에 따라올 문장은 불경이려나.

믿음이라는 게 어떤 형태인지 궁금해졌다.
신에게 기댈 일이 없다는 이 무례함으로선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곳.
더 생각은 많지만 적지는 않아야지.
아무튼 신을 믿지 않는 입장에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무신론자라면 위트로 넘길 수 있을 얘기라도 유신론자에겐 불순하게 여겨질 문장이 곳곳에 등장하므로 주의 바람.
매력적인 인물들과 흥미진진한 이야기, 나는 그거면 됐다.
후속 <악마도 때로는 인간일 뿐>이 읽고 싶다.
왠지 이 책에 등장하지 못한 카인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
기다림이 늘겠다.


할 수만 있다면 기도라도 하고 싶지만 이제 누구한테 기도를 한단 말인가? 지금까지 내가 신 바로 옆에 있던 무신론자였다면 이제는 신이 없는 유신론자가 되었다. -p.278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수백만 명을 희생시키는 신이 과연 인간에게 필요할까?"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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