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인의 항아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1
오카지마 후타리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4.6
일본의 엘러리 퀸이라 불릴만큼 전설적인 명콤비 오카지마 후타리의 마지막 작품이란 말에 끌려서 자칫 어려워보이는 기하학적인 무늬의 책을 뽑아왔다.
생각보다 엄청 쉽게 읽힌다.
그리고 요즘 한창 관심있는 가상현실게임에 대한 이야기라니 흥미진진하다.

일단 25세의 휴학생 우에스기는 자신이 게임북 시나리오 공모에 냈다가 실격당했던 소설을 가상현실게임의 원작으로 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계약금 200만엔을 받고 원작을 5년간 입실론 프로젝트에 넘기는 계약을 마친 우에스기는 KLEIN-2라고 불리는 가상현실게임의 체험 대상자가 된다.
우에스기는 리사라는 알바생과 함께 K-2를 플레이어로서 체험하게 되고 첫 시연에서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며 숨이 막힐듯한 느낌과 함께 돌아가라는 남자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남자의 목소리는 구체화되고 익숙한 그 목소리가 자신에게 프로토타입을 설명해주던 기술자라는 걸 알게 된 우에스기는 리사의 실종과 더불어 입실론을 조사하게 된다.
`뫼비우스의 띠`를 사차원화시킨 `클라인의 항아리`라는 개념을 알게 된 우에스기는 자신이 리사가 사라진 그날부터 항아리 속에 들어가게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매트릭스와 인셉션 등의 영화가 탄생하는 근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클라인의 항아리>.
망막을 렌즈삼아 눈에 영상을 띄우고 몸을 감싼 스펀지를 통해 오감을 그대로 체험하게 되는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소재를 1989년에 생각해냈다는 건 진심으로 놀랍다.
프롤로그라고 할 수 있는 첫 부분과 마지막 결말 사이의 괴리가 느껴지는 점과 결말이 흐지부지된 것을 제외하면 시종일관 충격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그 결말 또한 나름 충격적.
과학기술 분야에 문외한이라 그런 지는 몰라도 지금 봐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내용이 감탄을 자아낸다.
실제로 당시 컴퓨터 메모리가 1메가이고 게임데이터의 테라 단위가 컴퓨터 몇백 대라는 설명만 없었다면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에 나온 이야기라곤 믿기 힘들다.
이 작품이 마지막이라니 진심으로 아쉬울 정도.
게다가 89년 작이 2011년에 한국에서 출판된 건 둘째치고 오카지마 후타리의 한국 번역본은 이 마지막 책 한 권과 <컴퓨터의 덫>이 다라고.
콤비 중 한명인 이노우에 유메히토의 작품도 번역된 건 2011년까지 <메두사> 한 권뿐이라고 하니 암담하다.
역시 일본어 욕구는 좋은 소설을 읽을 때 가장 불타오른다.

가상현실게임을 처음 접한 건 아마 `매트릭스`, 그리고 다음에서 완결난 웹툰 `언더시티`(후기가 가장 중요한 만화)와 현재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 중인 `더스크 하울러` 정도인 것 같은데, 사실 언더시티와 더스크하울러 덕분에 요즘 전혀 관심도 없었던 RPG에 꽂힌 상태.
그래서 인지 더 재밌게 읽혔던 작품이었다.
언젠간 진짜 이정도의 가상체험게임이 나올 날이 올까.
당연히 언급한 작품들에서 다뤄진 부작용이 따를 테고 현실과 가까울 수록 부작용은 큰 법이니 과연 죽기 전에 볼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죽기 전에 출시된다면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
항아리의 안인지 밖인지,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도넛 모양의 고리를 한 번 비틀면 뫼비우스의 띠가 돼듯 가상현실게임이라는 걸 한 번 비틀면 <클라인의 항아리>.
<메두사>도 꼭 봐야지.

덧. 마지막 장에 비채의 `블랙&화이트시리즈`의 목록이 나오는데 대부분이 낯익다.
좋아하는 소설들.
이 라인을 공략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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