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용골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5.0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은 <빙과>밖에 몰랐다.
아무래도 <빙과>가 데뷔작이었으니 가볍게 추리를 다루는 라노벨 작가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띄엄띄엄나오는 <빙과> 시리즈들 사이에 간격이 커질수록 작가 소개가 늘어가는 걸 발견하곤 궁금해졌다.
설명대로 미스테리 추리협회상 등등 미스테리 관련 상을 휩쓸 정도면 정말 정통적인 추리물일텐데 과연.

<부러진 용골>이란 제목 따라 배와 관련된 이야긴가 싶었는데 죽 나열된 목차와 등장인물이 왠지 심상치 않다.
12세기 십자군 전쟁을 떠난 왕을 둔 나라, 솔론이라는 독립된 영토의 칭송받는 영주.
그의 딸인 아미나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불쑥 찾아와 마술을 익힌 암살기사에 대해 경고하는 기사, 자신들의 땅을 되찾으려는 불로불사의 종족, 전쟁을 대비해 모은 용병들의 각기 다른 나라와 저주들.
아미나에게 진실을 털어놓는 아버지가 다음 날 아침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기 전까진 이 책이 미스테리라고 보긴 힘들다.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그로 인한 추리를 해나가면서도 포로의 탈출이나 데인인과의 전쟁 준비 등의 상황 탓인지 단지 미스테리물이라고만 보기에는 그 세부설정이 아까울 지경.
그리고 그외에도 `마기`를 연상시키는 청동거인 탈로스라던가 리터의 눈물같은 마술이 계속 등장하는 점도 이야기의 색채를 모호하게 만든다.
사실성이 가장 중요한 추리소설에 판타지가 섞이면서 <부러진 용골>은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책이 되었다.

다 읽고 나니 그저 놀랍다.
그리 좋아하는 소재도, 시대도, 내용도 아니지만 손에서 뗄 수 없었다.
세계사를 배웠어도 전혀 암기에 소질이 없던 탓에 거의 문외한일 정도로 생소한 남의 나라의 역사다.
그리고 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 시대에 검과 마술이라는 키워드로 특수 설정 미스테리를 펼쳐보인 건데 어떻게 이만큼의 세계를 짤 수 있는지 그저 신기하다.
미스테리로 명목을 세운 소설이지만 꼭 실제 전설을 담은 역사서를 읽은 느낌이다.
현실적이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시대상과 전설임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꽤 재미있는 기록같은 책이다.
제목의 이유를 설명하는 니콜라와의 그 대사로 후속편이 나올만한 여지는 충분히 남긴 듯 한데 그럴 생각은 없다니 아쉽다.
실제로 요네자와 호노부라는 이름에 바로 붙는 소설은 아닌 것 같지만 나로선 <빙과> 다음으로, 어쩌면 <빙과>보다 먼저 떠올릴 책이 된 듯하다.
소시민 시리즈가 유명하다던데 안 읽을 수 없겠네.

쓰고보니 이 호불호갈리는 작품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등장인물의 정보가 적힌 페이지, 배경은 중세 유럽, 무엇보다 판타지와 현실을 혼합해 그려낸 이야기.
네크로폴리스, 라이온 하트, 우리집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등등.
이 방면으론 잘 아는 작가가 한명 있지.
내가 아주 아주 사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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