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고래

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4.0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추천하는 것이면 짐짓 눈길이 간다.
그것에 휘둘리다가 몇번을 실패해놓고도 나 자신의 대중성을 시험하듯 슬그머니 또 도전해보는 것이다.
<고래>는 몰입도가 뛰어난 소설을 찾는 댓글에 가장 많이 추천된 책이었다.
그래서 그후의 작가의 작품에 모조리 실망했다는 반응들까지 담아 찾았고, 뽑아들었다.

내용은, 뭐랄까 특이하다.
뒷표지에 내용 한 줄 안적힌 채 ｀특별함｀이라는 말로만 도배해놓은 걸 봐도 그렇다.
이야기는 이랬다가 저랬고, 왔다가 간다.
매력적인 이야기임에는 틀림없지만 작가의 후속작들은 전멸이라는 반응이 약간 이해된다.

기실 그 풀어내는 방식을 제외하고는 크게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제목부터, 분명 주인공이라 할 인물은 춘희와 금복이고 결론적으론 춘희의 삶에서 금복을 다룬것이니 춘희가 주연인 것인데 춘희의 인생에 점보보다 못한 고래를 선택한 게 그렇다.
(아닌가 결국 주인공은 노파였을까)
특이함에 소설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치더라도 제목과 주인공은 원칙이고 뭐고 이야기의 머리라고 생각하기에.
이런 비슷한 전개방식으로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가 얼핏 생각나는데, 이쪽 저쪽에서 미주알고주알 나열되고 펼쳐진 그 조그마한 이야기의 알알이 어떻게 조합되었는지가 확연히 다르다.
<다다미->를 알록달록 수십개의 천을 잘 엮은 퀼트라고 본다면 이 <고래>는 형형색색의 무늬를 가진 양탄자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듯하다.
본디 하나였던, 그러나 결국 다 다른 모습으로 남게 된.

<고래>는 금복과 춘희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저 쭉 뽑아놓았을 뿐이다.
완벽할 지는 모르지만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 분명 여기서 더 뭔가 있어야 하는데 라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야기는 여자가 남자가 되는 등 갖가지 맹랑한 설정에도 뭔가 진짜같은 느낌을 준다.
극화되지 않고 과장되지 않은 이들의 삶을 보는 느낌, 말도 안되는 걸 믿게 하려는 듯한 사실적인 인물들과 배경이 투박한 이야기를 묶어낸다.

읽는 내내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화자 때문인지는 몰라도 판소리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리저리 휘몰아치는 전개방식도 언젠가 TV에서 본 춘향전을 꼭 닮았다.
모두가 죽어간 이야기, 그럼에도 찝찝하지 않은 건 필시 그 문체 덕이다.
그리고 판소리처럼 가락을 타듯 이야기는 굽이굽이 흘러 들어온다.
휙휙 잘도 읽힌다.

꼭 이야기의 끝에 교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야기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는 또 처음인 것 같다.
분명 다 읽었는데 도대체가 뭔지 모르겠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가 아니다.
｀작가는 왜 이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
소설이, 이야기가 가상이라는 단어로 대체될 지언정 장황한 거짓말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이 경계가 애매모호한, 누군가의 삶을 꾸며내 옮긴 듯한 글은 참 생소하고 신기하다.
도입부는 시작같지 않고 엔딩은 끝같지 않다.
소설이라는데 소설같지 않다.
문득 어떻게 끝났지 하고 책을 다시 뒤져보다가 <1Q84>가, 하루키가 왜 떠올랐는지는 모를 일.
그냥 이런 소설도 있구나 하는 마음이 남는다.
뭐 흥미로웠으니 그거면 된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