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위 - 꿈에서 달아나다
온다 리쿠 지음, 양윤옥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4.7
고등학교 때 하라는 공부는 않고 도서부원이라는 핑계로 엄청나게 책을 읽어댔다.
아마 인생에서 제일 많은 책을 읽었던 게 그 3년이었을 거다.
그 수많은 책 중 기억나는 건 딱 두 개뿐인데, 하나는 제드 러벤펠드의 <살인의 해석>.
마침 또 읽고 싶어져서 다음에 빌려올 생각이니 그건 일단 제쳐두고, 다른 하나가 바로 `온다 리쿠`였다.

처음 읽었던 작품은 <네버랜드>였는데 표지가 마음에 들었던 가네시로 가즈키의 <레볼루션 No.3>와 비슷한 시기에 읽어서 기억에 남았었다.
이어서 <여섯번째 사요코>. 그 이후로도 책을 사며 몇 번 더 읽었지만 표지만큼 기묘한 음산함이 첫인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그전까진 그냥 제목과 표지만 보고 읽었던 터라 읽고 나서 작가를 확인한 경험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온다 리쿠` 그 이름이 적힌 책을 찾다가 전의 두 작품이 다 그녀의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의 소름에 가까운 충격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때부터 나는 `온다 리쿠`의 모든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워낙 다작작가인데다 작년엔 이것저것 정신이 팔린 게 많아 신간이 나왔는지 확인하지 않았다.(확인해봐야 살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그저 작년 7월 도서관에서 <Q&A>를 발견해 읽고 소름이 돋은 정도? 그건 확실히 무서웠다.
그리고 올해 `모리미 도미히코`에 빠져 다른 작품을 찾다 그녀의 이름을 오랜만에 검색해보았고 그 결과 얻은 정보가 바로 이 책 <몽위>였다.

꿈을 영상화할 수 있는 기기가 생겨난 시대, 불가사의한 현상들이 줄지어 일어나고 그 끝에 일본 내에서 가장 뛰어난 예지몽을 꾸었던 유이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꿈은 참 매력적인 소재다.
뭐 하나 확실한 게 없는, 말 그대로의 미지의 영역이다.
혹시 그런 세상이 정말 존재하는듯 생생히 와닿고, 어떤 말도 안되는 이야기도 다 진실처럼 믿게 만들며, 때로 꿈인 걸 알고 조종하는 것마저 가능한, 프로스트의 말에 의하면 무의식의 발현이라는 세계.
이렇게나 문명이 발전하고 과학이 진보해도 알 수 없는, 그렇기에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하기도 한 `꿈`이라는 소재는 문학의 단골손님이다.
그렇게 많은 작가들의 이야기에 등장하고서도 또 내어줄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단 게 꿈의 진정한 매력인듯.

나는 평소 꿈을 안 꾸는데(이렇게 말하면 꼭 꾸는데 기억을 못한다고 하더라. 어쨌든 나는 꿈을 모른다) <몽위>를 읽으며 `몽찰`이라 불리는 꿈 해석을 진심으로 당하고 싶어졌다.
나의 무의식은 도대체 어떤 세계를 여행하고 있을지, 그 세계엔 과연 무엇이 있을지 너무 궁금하다.
그런 호기심을 가지며 계속 읽었는데 끝에 이르러선 좀 무서워졌다.
역시 미지라는 건 호기심과 탐구심을 치솟게 하지만 기본적으론 공포와는 단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한다.
그 무서움과 함께 조금 결말이 빈약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지만 그리 거부감은 들지 않는다.

아무튼 `온다 리쿠`의 글은 정말 물처럼 유려하게 흘러간다.
작품 수와 더불어 그녀를 `노스탤지어의 마술사`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한 그 특유의 분위기 탓에 다 비슷비슷하다는 식의 말이 나오긴 하지만 읽어보면 확연히 다르다.
가령 미스테리 작가이니 공포라는 장치를 잘 사용하는데 <Q&A>의 공포와 이 <몽위>의 공포를 비교하면 그 질이 다르다고 할까, 다른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같은 추리소설이라도 <유지니아>나 `간바라 메구미` 시리즈인 <메이즈>와 <클레오파트라의 꿈>, <금지된 낙원>이나 <어제의 세계>나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이나 <여름의 마지막 장미> 등등 다 차이가 난다.
결코 한 이야기에 매여 복제한 이야기를 내놓거나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들을 잡아먹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그 고등학교 2학년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이후로 아직 갱신되지 않았지만.

호불호가 갈린다. 매니아층이 두텁다.
무슨 상관이랴.
그저 이런 작가가 내게 존재한다는 게 좋다.
내 모든 책장을 가득 메우고도 더 채울 이야기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다시 한번 더 책장을 열어야지. 또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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