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아이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4.5
<불로의 인형>을 읽고나서야 장용민이 <궁극의 아이>의 작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읽어본 적은 없었지만 제목은 분명 익숙했기에 <불로의 인형>보다 낫다는 평을 찾아 읽으며 한껏 기대하고 있었다.
내용에 대해선 하나도 찾아보지 않아서 처음 표지를 봤을 땐 상상하던 분위기와 달라서 조금 놀랐다.
<불로의 인형>의 표지와 비슷하지 않을까 했는데 피부에는 주근깨가 나있고 신비스러운 오드아이를 가진 소녀의 얼굴이 표지를 가득 메우고 있다. `궁극의 아이`라는 글자와 함께.

`궁극의 아이`라는 어감은 사실 지나치게 문어체라고 할까. 작품 속에서 외국인들이 `궁극의 아이`를 말할 때마다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다할 궁에 다할 극,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끝이라는 `궁극`의 아이.
제목만으로는 절대 내용을 유추할 수 없다.

이 어마어마한 스케일을 간략하게 줄이는 게 왠지 미안하지만 결론은 전 세계를 뒤흔드는 그림자 정부의 비밀병기인 `궁극의 아이`가 죽은 뒤 십년되는 해에 그들을 향해 복수를 시작한다는 내용이라고 하면 되려나.
그 골조를 토대로 과거 호크쉴드라는 거대한 가문과 이집트의 파라오들에 알렉산더 대왕, 또 현재의 달라이 라마 서거, 중일 대립과 테러 등등 역사와 기록을 교묘하게 엮어 놓는다.
<불로의 인형>에서도 느꼈지만 이 많은 집단과 사람들을 겨우 선 하나로 이어 놓는 걸 보면 작가가 얼마나 멀리 씨앗을 던졌을지, 그걸 찾기 위해 얼마나 숲을 뒤졌을지 상상이 안 간다.

미래를 기억하는 아이, 세계를 손에 쥐고 흔드는 악마 개구리(어감이 너무 안 어울린다), 과잉기억증후군 등 어디서나 한번쯤 쓰였을,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소재다.
아담의 유치원 부분은 또 미묘하게 판타지스럽다.
(뭐 애초에 `궁극의 아이`가 판타지니까 괜찮은 건가.)
그걸 이만큼 줄줄이 꿰어낸 건 확실히 작가의 능력이겠지.
가장 아쉬운 건 미셸일까.
미셸이 가야를 찾겠다고 움직이는데 왠지 모르게 코난의 어린이 탐정단이 생각나더라는.

아무튼 재밌게 읽었다.
둘다 재밌었지만 내 취향은 <불로의 인형>쪽인 듯.
<궁극의 아이>보다는 조금 더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이 된 것 같아서 둘 중엔 아무래도 그쪽이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무래도 후속작이니 더 발전을 한 걸까.

이런 류의 소설은 김진명 이후로는 오랜만에 접하는 듯하다.
이 거대한 이야기들을 그냥 역사 소설이라고 하면 되려나.
감히 상상도 못할 이야기를 쓰는 작가들에게 경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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