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책장에 꽂힌 책의 제목을 훑는다.
마음에 드는 걸 뽑아 들어 표지를 잠깐 관찰한 후엔 뒤로 돌려 소개글을 읽어본다.
그리고 갈피에 적힌 작가 소개를 읽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들어 쓱쓱 넘겨 본 뒤, 드디어 읽기로 결심한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신간 코너에서 끌리는 제목을 찾다가 <모미지마치 역 앞 자살센터>라는 책을 발견했다.
덮개는 벗겨졌고 앞뒤로 아무 글씨 없는 하드커버지를 펴 작가 설명을 읽고 난 후, 나는 즉시 뒷 과정을 생략하고 이 책을 빌려왔다.

책은 자살을 국가에서 관리하는 자살센터라는 게 생긴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역마다 총을 든 경비원이 지키고 있는 자살센터로 인해 실제로 자살자의 수는 줄어들었다.
자살센터를 통하지 않는 자살은 가족과 친척에게 벌칙이 부과되고, 센터의 기준에 못미치는 14세 미만의 아이들이 자살을 선택했을 시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꼬리표를 달고 손가락질 받으며 살게 된다.
자살센터는 기본적으로는 자살을 부정하지만 5번의 면담을 통해 부득이하다고 판단될 시,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의 방법으로 자살을 돕고 있다.

주인공인 도이는 6년 전 한살배기 아들을 무차별 살해한 살인마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날, 삶의 목적을 잃고 자살센터에 전화를 건다.
도이에게 남은 거라곤 전처인 유리, 친구인 구로세, 그리고 불면증을 위한 약을 건네주는 기리코 뿐이다.
5번의 면담을 하고도 자살하려는 의지를 꺾지 않은 도이는 자신을 평생 사랑하지 않았던 아버지와 전처인 유리에게 자살통지서인 붉은 편지를 보내기로 하고 자살센터에 들어간다.

˝언제든, 돌아와라.˝
일순, 후회 같은, 아픔 같은, 그런 감정이 치밀었다.
이런 내게, 이런, 가치 없는 내게. -p.141

사실 글을 읽으면서 한편으론 이 있을 법한 자살센터의 합리성에 감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을 꾸짖듯 작가는 마지막에 마구 내용을 진행시켜 이야기를 휘감는다.
읽는 내내 도이의 슬픔에 동조하게 되지만 결국 `죽으면 안 돼` 하고 바라게 만들도록 이끌어내는 책이다.
다 읽고 나선 또 작가의 소개말이 떠올라 참 슬프다.

미쓰모토 마사키.
1978년 오카야마 현에서 태어났다. 19세에 오사카로 가서 영상 제작, 카피라이터 등 다양한 일을 하다가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첫 장편소설인 <모미지마치 역 앞 자살센터>로 제8회 신조 엔터테인먼트 대상을 수상했다. 오랫동안 조울증과 불면증을 앓다가 2014년 3월 31일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모미지마치 역 앞 자살센터>는 그의 첫 장편소설이자 유작이다.

상실의 상처는 결코 아무는 일이 없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지 않는 것처럼.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지 않는 것처럼. 상실의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는다.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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