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과 데이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0
서수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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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환장‘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장 많이 떠오른 단어가 그거였다.
컬쳐쇼크, 이름하여 대환장파티로 시작되던 글이 햇살에 깨어지고 유화처럼 뭉개지더니 종래엔 파도에 부서진 모래알같은 잔상만 남긴 채 마무리되었다.

짧은 소개글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의 주인공, 유진과 데이브는 한국과 호주 간의 문화 차이로 인해 끊임없이 다툰다.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다른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된 과정은 너무나 간단했다.
다만 모든 답을 내어줄 수 있을 것 같던 애정도 조금씩 해지고, 서로 마주보며 웃는 것만으로 채워지던 행복이 바닥나고 보니 남은 건 현실이고 형편이고 자존심이고 이기심이더라.

한계에 굴복하며 미술의 길에 발만 걸치고 있는 유진이 호주에 가서 마찬가지로 정처없이 헤매는 중인 데이브를 만나 사랑을 한 게 전혀 평범하진 않은데 파헤쳐보면 또 지극히 평범하고 보편적이다.
싸우는 장면에서도 유진이 하는 말 보다 데이브가 이해갈 때도 있고, 반면 어떨 땐 데이브의 말이 해괴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결국은 문화 차이가 42퍼센트 정도 섞인 개인차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본인의 가족 앞에서 하지않아도 될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데이브를 발로 차주고 싶은 마음 역시 분명히 알 것 같고, 뷰가 좋은 옥탑방을 고집해 함께 누운 자리에서 서른셋에 이러고 있는 남자를 수발해야하는 데서 느끼는 그 심정 또한 익숙하다.
호주 사는 데이브에게서 자꾸만 내 과거의 조각이 만져진다.

그러는 한편 본인의 재능을 향한 의심과 은근슬쩍 가해지는 인종 차별들이 유진의 현실을 자꾸 고통스럽게 만드는데, 거기에 호주 사람들은 본인들이 학살한 원주민 이야기를 얹고 한국인 엄마는 한국의 규칙을 강요한다.
호주에 있으면 한국인이 되는데 한국에 있으면 호주인의 말을 따라하게 된다.
결국 어느 곳에도 섞이지 못하고 바라던 것들도 이루지 못한 채 남김 없이 털어내져서 내동댕이쳐진 듯한 기분.
군중 속의 고독과 홀로 뒤쳐지는 절망, 섞이지 못하는 소외감 등등.
사실 배경만 바뀌었을 뿐 누구나 어디서나 한번씩 느껴본 적 있지 않을까.

원주민 이야기와 인천 상륙 작전을 언급하는 모습 저변에 너무나도 당연히 선민사상 비스무리한 게 깔려있어 불쾌감을 자아내는데, 점차 쌓여가던 감정이 미술관에서 등에 문신을 한 채 앉아있는 팀으로 인해 터지고 만다.
이 비슷한 걸 느낀 게 영화 ‘기생충‘이었던 걸 생각하면 두 간극에서 만들어진 차이가 얼마나 쉽게 비슷한 모습으로 대체될 수 있는지 놀랍다.
굳이 좌우를 나누어 내가 어느 위치인지를 확인하고 나면 찾아오는 소소한 동질감과 그로 인해 미묘하게 대표성을 띠게 되는 소속감 비스무리한 것이 결국엔 불편함으로 향해지는 과정.
기껏 새로운 것을 맞으려 애써도 결국은 내 자리와 내 위치를 확인받고 마는 현실.
결코 쉽게 넘어갈 수도, 넘어갈 리도 없는 벽과 같은 선.
어디에나 끼우면 꼭 맞아 떨어지는 테트리스의 막대기 블럭처럼 선명한 간격만큼 그어진 선이 단지 어느 한 곳에만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조금 더 길었으면 어떨까 싶다가도 적절하게 보여줄 걸 다 담았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어서 읽고나면 딱 적당하게 만족스럽다.
본인 피셜 유진보다 더한 앵그리 코리안 작가가 호주인 남편에게 감사를 전하는 후기까지 더할 나위없는 마침표였다.

뒤돌아 앉아 있는 팀을 보고, 작별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그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자신에게는 너무나 괴롭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게 어떻게 괴롭지 않을 수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괴로운데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라면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싸우지 말라고, 도망치라고,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혀서 몸의 무엇도 빼앗기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그의 침묵을 대답으로 삼아 그에게서 돌아서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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