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느낌이 틀린 게 아니라면 포크너는 그 어떤 인위적 기준을 불문하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뱀처럼 똬리를 튼 일반화를 균열시키고자 했던 사람. 그로써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내고 싶어했던 작가. 선악의 모호함과 좌우고저 어떤 차원에서 보든 온통 모순으로 가득한 현실을 줄곧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했던 한 인간. 태어난 이상 원하든 원하지 않든 벗어날 길 없는 소란과 분노의 문명 속에서 그럼에도 거두고 싶지 않았던 연민의 시선과 끝내 구원에 이르리라는 불씨와도 같은 그의 이야기들.

이런 포크너의 시선과 크게 다름이 없어 보이는 2002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 2018 이창동의 <버닝>, 2019 봉준호의 <기생충>. 지난 날, 대한민국 영화계 거장들의 가상현실 속 부자는 죽음으로 끝을 맺었다. 고백이건 고발이건, 내면의 발현이건 현실 사회의 어느 부분이 투영되었건 어느 한쪽이라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곱씹어 볼 만한 결말. 절대악도 절대선도 아닌 그들의 부자와 빈자. 아이러니의 연속 끝에 도달한 상대적 빈자들의 살인. 충동과 충돌. 여운이 채 가시질 않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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