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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1년
이인화 지음 / 스토리프렌즈 / 2021년 2월
평점 :
세종이 창안한 15세기 표기법인 이도 문자를 쓰는 인공 지능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2061년. 아이러니하게도 이도 문자를 창안했던 한국인들은 2049년 전쟁으로 폐허 된 한반도를 떠나 옛 유대인들처럼 디아스포라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한국인들은 서러운 난민으로 대도시 뒷골목을 떠도는데 그들의 문자는 지구 문명의 이유를 말해 주는 신성불가침의 진리로 추앙되었다(p. 40).
세종대왕이 창제한 이도 문자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설정은 흥미로웠으나 한반도가 2049년 핵 전쟁으로 폐허가 돼버리는 설정은 끔찍하게 느껴졌다.
크로노도프(시공간) 보호법 위반으로 복역 중인 심재익은 미국 정부로부터 모종의 제안을 받는다. 2061년 인류의 멸망을 야기할 바이러스(아바돈)가 한 달 뒤 출연한다는 최신 연구 결과에 따라 아바돈의 치명적 옛 것인 1896년 조선에 나타났던 에이치원 데모닉의 살아있는 숙주 표본을 구해오라는 것과 인공지능이 쓰는 이도 문자의 시작인 훈민정음해례본을 태워버리는 것, 두 가지 요구이다.
초공간 역사학회 회원이었던 그에게 과거 조선으로의 탐사를 해주면 남은 4년의 형기를 감면해 준다는 조건이다. 핵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상실감이 큰 심재익에게 시간 탐사를 통해 가족을 되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솔깃하다.
국제 방역 연합의 이수지 팀장은 심재익과 반대로 코로나 팬데믹의 원형을 지키고 심재익을 죽여야 하는 미션을 받게 된다.
1896년, 경무관 박진용을 숙주로 사용하는 심재익과 간호사가 강마사를 숙주로 사용하는 이수지, 이외에 다양한 인물 군들이 자국의 이익과 이도 문자라는 훈민정음해례본을 차지하기 위한 충돌이 일어나는데…….
‘세종에게 인생의 목적은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었소.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었소. 인간의 모든 소리, 자연과 동물과 기계의 모든 소리를 표기하는 이도 문자는 마음의 가장 깊은 밑바닥까지를 이해하게 하는 것이었소(p. 369).’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하려고 문자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심재익의 말처럼 백성을 사랑한 세종대왕도 어쩌면 그런 목적을 생각했을 수도 있었겠다.
'지진이 나고 폭풍우가 휘몰아칠 때가 사실은 가장 행복한 때라 믿고 싶다. 그럴 때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뭔가를 깨달으니까. 우리는 위기 때문에 더 강해질 것이고 더 멋진 일을 하게 될 것이다(p. 381-382).'라는 저자의 말이 그가 이 책을 구상하게 하는 계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팬데믹과 인공지능이라는 소재와 이도 문자를 적절히 버무려 가까운 미래를 그리고 있다.
자고 나면 기술이 진보하는 시대에 살고 있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겨우 40년 후의 세상이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설정되어 있다.
두렵다.
하지만, 결국 저자의 말처럼 결국 인간은 모든 걸 이겨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