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세익스피어, 독일에 괴테가 있다면 우리에겐 박지원이 있다는 박희병 교수)
영남대의 박지원 산문 연구가 김혈조 교수가 번역한 ‘열하일기’ 1권이 이어 2권을 구입코자 인터넷 서점을 통해 ‘열하일기’를 검색하니 같은 박지원 연구자 박희병 교수의 ‘연암을 읽는다’가 뜨게 되어 몇 년 전 구입하여 둔 것이 생각 나 책장 서가를 일별해 보니 눈에 띄었다. 책을 펴보니 2006년에 발행된 서적으로, 목차를 살펴보니 연암의 산문 중 널리 알려진 문장 20편을 뽑아 주해와 평설 그리고 마지막에 총평으로 문장을 마무리한 책이다.
그러고 보니 연암 박지원의 산문에 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오래되었지만 꾸준히 깊이 있게 독서하진 못한 것 같다. 그저 역사에 등장하는 북학파의 종장으로 또는 정조대의 이용후생학파를 이끈 인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1980년대 초 한국학에 관심을 가져 민조문화추진위원회 부설 국역연수원을 청강할 무렵 학생들을 대상으로 민추에서 발행하는 도서를 할인 판매하여 그 때 구입해둔 ‘동문선’ 12권과 이가원 선생이 번역한 ‘열하일기’2권을 구입하여 오늘날까지 보관하고 있다. 1977년 수정3판에 가격이 3,250원 이었으니 당시 교직경력이 짧았던 나의 보수로는 무리한 액수였으나 필요시 꺼내 참고하며 ‘열하일기’는 상권을 인내하며 읽다 워낙 방대한 책이라 중지한 것으로 기억된다.
서울대 박희병 교수는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의 「과정록(過庭錄)」을 『나의 아버지 박지원』으로 번역 하면서 서문 첫머리에 ‘영국에 세익스피어가, 독일에 괴테가, 중국에 소동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朴趾源)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터이다.’ 라고 설파하였다. 박교수는 이어 ‘연암을 읽는다.’에서 그 때 어느 기자에 대한 질문에 답변이 부족함을 느껴 그 뜻을 포함하여 이 책을 냈다고 소개했다. 과연 세계가 인정하는 문학가와의 어깨를 겨눌 수 있다는 자부심이 묻어나는 문장인가 관심을 가지며 다시 읽어보았다. 한편으로 우리도 이런 한문학인이 있음에 자긍심을 느끼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김혈조 씨가 옮긴 박지원 산문집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란 서문에서 원로 한문학자들은 ‘우리의 한문학이 연암 박지원에 이르러서 망했다.’는 말을 소개하며 연암의 한문학 작품이 역사상 최고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에 연암 이후에는 그러한 수준의 작품이 더 이상 나올 수 없으리라는 뜻을 역설적 찬탄한 표현으로 보고 있다. 한양대 정민 교수는 ‘비슷한 것은 가짜다.’란 주제로 연암의 글을 소개하며 ‘서늘함은 사마천을 닮았고 넉살 좋음은 장자에게서 배운 솜씨다. 소동파의 능청스러움, 한유의 깐깐함도 있다. 불가에 빠진 사람인가 싶어 보면 어느새 노장으로 압도하고, 다시 유자의 근엄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고 연암의 글의 깊고 폭 넓음을 기리고 있다. 정민교수와 박희병교수는 연암의 글을 번역소개하고 평설을 넣었다.
그러한 박지원의 글은 잘 알려진 대로 <열하일기>와 <연암집>에 있는 글들 중 가려 뽑아 번역하여 펴낸 것이다. 번역자들은 하나같이 연암의 문학의 위대성에 감탄하면서 번역의 어려움 실토한다. 연암의 글속에 ‘현실의 세계’에 대한 사색과 비판을 통해 우리가 실현해야할 세계로의 모색과 지향점을 제시 하는 것은 오늘날 읽어도 살아있어 민족의 고전을 값한다고 역설한다. 연암은 당시 유행하는 패관소품 체를 써 문체반정의 와중에서 정조로부터 순정 고문으로 된 반성문을 지어 제출하라는 벌을 받았다. 그는 고문가이면서 새롭게 표현하는 법고이창신(法古而創新)으로 살아있는 글을 썼기에 후대의 칭송을 받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오늘날은 한글이 일상화된 사회이다. 이제 공은 한문학자들이 원문의 훼손 없이 그뜻을 살려 잘 번역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널리 읽게 할 책임이 있다. 지금 나는 한문학에 관심이 있고 그 방면에 관심이 있지만 대중들은 취향이 다를 수 있다. 유능한 번역자가 나와 재미있고 즐겁게 연암의 산문을 많이 읽고 그의 위대성을 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박지원의 글을 그저 무심코 읽었지만 세 권의 책을 통해 관심을 갖고 읽은 글은 홍대용의 삶을 기록한 ‘홍덕묘지명’과 초정 박제가의 문집 머리말 격인 서문의 글 초정집서(楚亭集序)‘를 새겨 읽으며 홍대용의 삶과 연암 문장론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