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재(書齋)의 휘호(揮毫)를 받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그저 어디를 가나 책을 뒤지는 게 그저 좋을 뿐이다. 새 책에서 풍겨오는 인쇄잉크의 은은한 석유향의 냄새가 정겹기까지 하였다. 1950년대 책이 귀한 시절 초등학교 교과서를 나눠주던 학기 초 가슴 설레던 때가 아련히 떠오른다. 워낙 시골이라 늦게 도착하는 교과서도 있어 학기 중간에 받기도 했다. 그 당시 교과서 외엔 책이 귀한 시절이라 선친이 면 서기로 계시어 달마다 가져오시는 지방행정(地方行政)’이란 내무부 발행 잡지가 작은 서가에 꽂혀있어 틈나는 대로 펼쳐 보기도 하여 행정의 논문이나 어려운 글은 제외 하고 뒷부분의 행정 단신이나 문예란이나 나라 돌아가는 소식을 나에게 알려 주어 지금도 그 때 익혔던 인물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가형의 중학교 국어교과서와 도시 학교 교지의 글들이 유일한 읽을 거리였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가면서 교육이 자리를 잡고 출판계가 번성해 가며 책은 많아져 누구의 집을 가던 방이나 사랑엔 특히 학생이 있는 집엔 책꽂이가 있고 거기에 교과서와 참고서 중심의 책들이 꽂혀있다. 모처럼 친구의 집이나 초대를 받아 집을 방문했을 때의 관심은 그 집 책꽂이에 무슨 책이 꽂혀 있나를 살피고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관심을 가졌다.

 박철상 선생은 서재에 살다란 책자에서 전통시대의 서재는 학문과 아취를 상징하는 특별한 장소였다고 한다. 지식인으로서의 삶은 서재에서 시작되고 갈무리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서재 이름이 또 다른 자기의 표현이기에 자신의 별호로 사용하기도 하고 서재 이름은 곧 주인과 동일시된다. 주인의 삶의 방향이 담겨있기도 하고 고민과 취향도 담겨있어 삶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그러나 언감생심 지나온 내 삶이 지식인의 반열까지는 못가더라도 학인(學人)으로 한평생을 즐겼다는데 작은 만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젊은 시철 생활철학자 안병욱 박사의 논어를 해설하신 글을 읽다 학문이란 단순히 앎의 문제가 아니고 좋아하고 즐기는데 길이 있다는 것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 동앙고전 논어를 공부할 때 옹야(雍也)편에 그 구절을 유심히 살폈다. ‘자왈(子曰) 지지자불여호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요 호지자불여낙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를 아는 자가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가 즐거워하는 자만 못하다.’의 구()에서 3단계 논법의 첫 자만 따서 서재 이름을 지호락재(知好樂齋)라 하였다. 아직 도()를 깨닫지 못했지만 깨달아가는 과정이므로 그렇게 지은 지가 20년은 넘은 것 같다.

 나무에 새겨 놓으면 후손들에게 할아버지의 흔적을 보고 스스로 깨달아 모든 면에 노력하지 않을까 하여 서재 이름을 달기로 하였다. 젊은 시절 서예 할동을 같이 시작했으면서 선서(善書)를 서단(書壇)에 인정받은 추산(秋山) 박선목(朴先穆) 선생에게 지난 624일 의뢰 하였더니 바로 작품을 써 우편으로 보내주었다. 은분(銀粉)에 멋진 행서로 휘호해주었다. 이제 큰 글씨를 줄여 조그만 판자에 각자하여 새기면 될 것 같다.

 네 살 손자 녀석이 가끔 집에 방문하여 내 서재에 들어서면 책을 뽑아 펼쳐 본다. 이런 귀여운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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