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가설 - 부모가 자녀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탐구
주디스 리치 해리스 지음, 최수근 옮김, 황상민 감수 / 이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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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양육가설>을 처음 읽은 지도 15년이 넘었다. 당시엔 이 책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출간되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이 책은 그 전까지 읽은 그 어떤 교재보다도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으로 씌여 있어서 정말 읽기 쉬웠다. 게다가 이 책에는 그때까지 다른 교재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명백하고 중요한 사실들이 풍성하게 담겨있어서 새로운 시대의 발달심리학 교재로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했다. 실제로 발달심리학에 대한 내 관점은 이 책 이후로 완전히 새로 구성되었다. 내가 아는 출판사에 이 책의 번역을 추천한 적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해리스의 다른 책(개성의 탄생)이 먼저 번역되었다. 물론 그 책도 매우 좋다. 그녀의 발달이야기가 이 <양육가설>에서 시작되었음을 생각해보면 정말 먼 길을 돌아온 셈이다.


아직까지도 발달심리학연구는 대부분 부모와 자녀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그 이유가 부모-자녀관계가 제일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걸 연구하기가 제일 쉽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메리 에인스워드가 애착유형 분류기준을 제안한 이후, 발달심리학계에서는 부모-자녀관계를 측정하고 수량화하는 기법을 착실하게 개발해왔다. 반면에 또래관계를 측정하거나 그 유형을 분류하고 그것의 발달적 효과를 수량화하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를 잃어버린 동전을 찾아야 하는데 실제 동전의 위치와는 상관없이 가로등 불빛 아래가 제일 밝다는 이유로 그곳만 뒤지는 행동에 비유한다. 저자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본인이 여러 권의 발달심리학 교재를 편집하면서 어느 누구보다도 이 분야의 연구 결과들을 상세히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발달심리학계에서 저자가 모르는 연구결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에 해리스의 연구가 언론의 관심을 모으고 저명한 논문상까지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계의 변방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그녀가 박사나 교수도 아닌데다, 위와 같이 발달심리학 연구의 방법론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사실 <양육가설>이 말하는 “우리의 성장과정에는 부모보다는 또래집단이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는 전혀 새롭거나 낯선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 우리가 당연하다고 착각하는) “아동의 성장에 있어 부모의 양육이 제일 중요하다”는 믿음이야말로 2차 세계대전 이후(정확히는 핵가족 세대)부터 갑자기 떠오른 특이한 유행에 가깝다. 농경사회에서 아이들은 또래들과 어울려가며 성장했고, 근대에 들어와서도 아이를 키우는 주체는 가족 전체, 혹은 그 동네 전체였다. 심지어 지금의 현실도 그렇다. 영국의 상류층 가정에서는 부모가 아니라 유모가 아이를 키우고, 조금 더 크면 아이는 아예 기숙학교에서 성장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맞벌이 가정에서 아이는 부모보다는 학교와 미디어 속 또래집단과 더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부모는 양육의 주체이긴 하지만, 양육환경의 일부일 뿐이다. 이렇게 익숙한 사실을 건드리고 있기에 이 이야기는 오히려 오해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 SNS를 통해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그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 또래집단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부모가 또래집단을 정해주면 되지 않겠나?”.  <양육가설>이 말하는 건 A라는 또래집단이 B라는 또래집단보다 더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가 자신이 남들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런 나를 세상은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깨닫기 위해서 또래집단이 필요한데, 어떤 또래집단이든 그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결과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저자는 부모가 아이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부모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려준다.



이 책에 대해서 더 이상 설명하지는 않겠다. 그런 간단한 설명만 읽고 마치 이 책을 다 읽었다고 착각하는 사례를 더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봐야 한다. 우리가 인간의 성장과정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오해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그리고 그 믿음의 실상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부적절하며 어이없을 정도로 어색했는지를 깨달으려면 최소한 이 책 한권 전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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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심리학사
C.James Goodwin 지음, 박소현 외 옮김 / 시그마프레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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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에서 동료나 후배들과 심리학스터디를 시작한 이후 거의 5-6년간
우리는 바로 이런 책을 찾아왔다.

심리학의 철학적 기초에서부터 심리학발전의 기점이 된 중요한 사건들과
그 사건의 배경이 되었던 외부사건들 혹은 시대정신(Zeitgeist)
그리고 심리학 역사의 중요사건을 장식한 인물들의 개인사까지 ...
이 모든 것을 충실하게 다루고 있어서
같이 읽고 수다떨고 토론할 거리가 많은 그런 책을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80년대 후반, 90년대 전반까지는 이런 책이 없었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번역이거나
지나치게 철학에 치중했거나, 혹은 지나치게 전문적인 이론을 다루거나...

그런데 드디어 만났다.


이 책은 심리학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참으로 무지막지한 책이다.

하지만 심리학에 관심이 있고 그동안 여기저기서 심리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이론을 드문드문 들어왔고 그들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에게는
정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좋은 책이다. 

이 책 하나만으로 심리학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기초를 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카르트에서 부터 시작해서 발드윈의 개인사까지(데카르트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 알고보니 참으로 애석하더라... 그는 억지로 아침형인간이 되기를 강요받는 바람에 죽었다.) 왓슨이 왜 행동주의의 창시자이면서도 심리학교과서에서는 이름을 찾아보기 힘든지, 이 모든 것이 여기 있다.

정말 좋은 책이다.

[인상깊은 구절]
심리학은 오랜 과거를 갖고 있지만, 그 진정한 역사는 짧다.
- 헤르만 에빙하우스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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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 21세기 최첨단 무기시리즈 1
스티브 크로포드 지음, 김희재 옮김 / 북스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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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서, 이런 번역이라면 책을 내지 말았어야 한다.

이 책의 번역은 육군사관학교 무기공학과 교수라는 번역자의 경력에도 오점이고
육군사관학교 자체에도 불명예다.

역자 본인이 번역한 거라면 그의 영어실력과 화기의 기본지식이 엉망징창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그렇지 않고 휘하의 학생들에게 떠넘긴 번역이라면 육사생도의 정보수집능력과 교수 본인의 무성의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다.

우선 번역에 일관성이 없다.
같은 총에 대한 설명에서도 수류탄과 유탄이 혼용되며,
"확대가 되지 않는 망원경" 같은 말 같지도 않은 말이 난무한다.

블로우백 매커니즘은 후퇴작용식 매커니즘이라고 번역하면서
노리쇠뭉치 는 노리쇠 어셈블리라고 번역한다.

게다가 각 부분에 대한 표준화된 명칭도 없다.
이 책의 번역팀(?)은 대충 아래와 같은 신조어들을 창조해냈다.
(괄호안은 통상적으로 쓰거나 군에서 제식으로 사용하는 용어)

공격총(돌격소총, 혹은 어설트 라이플). 얼굴접촉판(칙패드, 뺨받침), 안전고리(안전장치), 선택-사격화기(자동-반자동 소총), 지연 롤러 구속장치(롤러록킹 블로우백, 롤러사용 지연 블로우백), 탄창 클램프(탄창 클립), 격발작동레버(장전손잡이), 노리쇠 고리(노리쇠 멈치)...

난리도 아니다.

엄연하게 군 제식 용어들이 있는데 왜 이런 신조어를 만들어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교수는 사관학교에서 어떤 식으로 강의하는지 궁금하다.

아래는 MG36에 대한 설명문의 일부이다. (67페이지)

"또 양손잡이 노리쇠 고리 버튼도 있다. 노리쇠 고리 자체는 노리쇠를 마지막 사격에서 뒤쪽으로 붙잡고, 공구를 사용하지 않고 사격수가 작동을 중지시킬 수 있게 하며, 탄창이 비워질 때까지 사격할 경우  노리쇠가 폐쇠되도록 한다. "

이 문장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는가?
이 문장 하나에만 잘못된 번역과, 아예 메커니즘 자체를 틀리게 설명한 내용이 5개 이상 들어있다. 책 전체가 이런 식이다.

이 책을 보면 여전히 우리 군에서 총알의 회전력으로 파괴력이 증가된다는 등의
비과학적인 이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다시 말하지만, 번역자가 제정신이라면 이 책은 빨리 회수해야 할 것이다.
최악이다.

총을 이해하는데도 거의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혼란만을 가중시키는 책이다.

유일한 미덕은 다양한 총기의 컬러 사진들이다.
이거야 원서의 사진을 충분히 활용한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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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어를 업그레이드 하라 - 한국어에서 배우는 영어의 비밀
최덕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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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교육 전공자도 아니고 어학 전공자도 아니다.

그저 자기 필요에 의해서 영어를 배워야 했던 생활인(?)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사실 같은 생활인이 알아야 할 진리는 더 잘 안다.

유명한 GRE 학원 창업자 중에도 유학준비하다가 아예 GRE 교육쪽으로 나선 사람이 있듯이...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별로 심오한 것은 아닌것 처럼 보인다.

제목만 봐서는 그냥 다 아는 얘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다른 어떤 영어학습 책에서도 잘 다루지 않거나 슬쩍 넘어간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영어를 제대로 쓰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들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영어는 말하기 쉽게 되어 있다." 고 지적한다.

강세나 발음의 원칙은 모두 쉽고 명확하게 말하기 위해서 진화된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 말하기 쉬우라고 만들어진 강세나 발음원칙 때문에 영어발음을 어렵게 여긴다.

이건 왜 이런 강세가 주어졌을지를 곰곰히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외우려 하기 때문이다.

이 대 원칙을 이해하면 영어를 이해하는게 훨씬 가벼워진다.

 

이것 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볼 가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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