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 흡혈마전
김나경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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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줄거리

1931년,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고 있을 당시. 열네 살의 희덕이라는 소녀는 진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1학년으로 재학 중이다. 어느 날, 기숙사에 계월이라는 새로운 사감 선생님이 부임하면서 일이 시작된다. 계월은 무뚝뚝하고 상냥하지도 않지만, 모던 걸처럼 세련된 모습과 구속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러나 자꾸 계월 주위에서 수상한 일들을 목격하는 희덕은 마냥 그를 좋아할 수는 없다. 창백한 피부, 뾰족한 귀, 가끔씩 드러나는 붉은 눈동자. 과연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의구심을 가지고 계월을 쫓아다니던 희덕은 그가 생물 선생인 이와모토의 목을 무는 장면을 목격하고 큰 충격에 빠진다. 기억을 지우려던 계월은 희덕에게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곤 어쩔 수 없이 흡혈마라는 정체를 밝힌다. 희덕의 친구 경애는 계월이 일본 총독부의 스파이라고 확신하지만 희덕은 사실을 밝힐 수 없다. 희덕은 경애의 오빠이자 경성제국대학의 학생인 일균과도 가까워진다.

계월과 묘한 줄다리기를 하던 희덕은 그가 뒤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도, 일균 역시 독립운동을 지원하지만 계월을 못 믿고 있다는 것도, 계월을 흡혈마로 만든 백작과 얽힌 과거 이야기도, 백작이 다시 접근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조선이 위험해진 계월은 사감 일을 관두고 만주로 떠나려고 하지만, 백작은 경애에게 접근해 경애를 흡혈마로 만들려고 한다. 이에 계월과 희덕이 힘을 합쳐 백작을 무찌르고 친구를 구해낸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희덕은 공부를 관두고 고향에 내려와 시집갈 준비를 하라는 편지를 받게 된다. 고민하던 그는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고 싶다는 다짐과 함께 계월과 함께 만주로 떠나는 기차에 올라탄다.


감상

1930년대는 구태여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어떤 시대였는지 다들 알 것이다. 일본의 지배를 받으며 핍박받던 식민지 조선. 그런 상황에서 어렵사리 학교를 다니는 희덕. 그리고 흡혈마로 살아가는 계월. <1931 흡혈마전>은 이런 흥미로운 배경을 바탕으로 쓰였다.

가뜩이나 일제 강점기로 혼란한 상황 속에서 두 주인공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큰 핍박을 받는다. 특히 희덕은 여자는 집에서 살림이나 하면 된다는 편견 속에서, 계월은 독립운동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 시대적 위기 속에서 그들은 나이차를 뛰어넘는 우정을 보여준다.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던 소설이다. 뱀파이어라는 소재는 오랜 시간 너무나 많이 다뤄진 소재이기에 1930년대라는 특별한 시대적 상황을 제외하면 소설 속 에피소드는 어디서 본 것 같은 클리셰가 많았다. 또한 계월과 희덕의 아슬아슬한 우정도 납득이 잘 되진 않는다. 계월은 어떤 계기로 희덕에게 마음을 연 것이고, 왜 희덕에겐 계월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것인가. 그리고 가장 큰 흑막으로 여겨지는 백작은 왜 갑자기 경애를 흡혈마로 만들려는 것이며, 그렇게 허무하게 죽는 것인가.


그럼에도 잘 시도되지 않았던 소재를 차용해 주제의식을 이끌어낸 점은 인상 깊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다룬 문학 작품이나 영화, 다큐멘터리는 많지만 그 속에서 여성이 부각된 작품은 여전히 적다. 책에서 언급되는 일제강점기 여성 작가이자 화가, 페미니스트인 나혜석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작가가 계월과 희덕을 여성으로 설정하고,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둘의 우정을 그려냈다는 것은 한국 문학에서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또한 작가는 이에 그치지 않고 당대 여성이 받아야 했던 억압과 차별을 효과적으로, 공감하며 분노할 수 있도록 잘 그려냈다.


"곱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모습도 아니지. 그보다 더 중요한 검, 자기 스스로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야. 당연해 보이지만 연습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말이야." - P133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이 허황되어 보여도, 절대 그 사람의 자세한 의견을 듣기 전에 환상이라 미리 결정 내리진 않을 거야.’ - P125

희덕은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것도 속이지 않고, 숨기지 않은 채로. 그래서 계월 또한 자신의 상황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맞설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희덕과 함께 있으면 계월이 도망쳐 온 과거 또한 맞설 수 있는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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