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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소년 문학에서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는 출판사가 있다. 다들 알다시피 창비가 그렇다. 단순히 기사나 반응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니다. 우아한 거짓말, 완득이, 위저드 베이커리…. 아슬아슬한 10대 시절, 내 가치관 확립에 큰 영향을 준 소설들이다. 또한 아몬드, 유원, 해방자들 등 계속해서 출간되는 청소년 소설들은 성인인 내가 읽기에도 너무나 좋은 소설들이었다.
이런 창비에서 흥미로운 소설을 출간했다. 바로 제1회 창비X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대상에 빛나는 박소영 작가의 장편소설 <스노볼>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말만 들어도 뼛 속까지 추운 영하 41도의 혹한기가 도래한 미래 사회다. 극한의 추위에 노출된 '바깥세상'과 따뜻하고 쾌적한, 선택받은 자만이 살아갈 수 있는 '스노볼'. 스노볼이란 주로 겨울철에 많이 등장하는 동그란 구 안에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장식품이다. 이런 스노볼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책의 제목이 왜 이것인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특권층의 지역인 스노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 스노볼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액터'가 되어 매일같이 일상을 중계해야 한다. 바깥세상에서 사는 평범한 전초밤은, 스노볼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액터 고해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몰래 그녀의 역할을 대신해내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일상을 생중계한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1998년에 개봉한 명작 <트루먼 쇼>가 이미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소재를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런 '액터'를 대신할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한번 더 비꼰다.
또한 바깥세상과 스노볼처럼 다압과 렌막이라는 지역이 구분되어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계급사회의 분류를 구분했다는 점에서 김남중의 <해방자들>이라는 소설이 연상되기도 했다.
한때 청소년 소설과 성인 소설을 구분해 놓고, 둘의 차이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내린 결론은 둘의 큰 차이는 없다는 것이었다. 둘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보다는 청소년 소설이라고 이름 붙은 소설들을 성인들이 읽어도 큰 무리는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내 고민을 확실하게 정리해주는 단어가 나왔다. 바로 영어덜트라는 단어다. 특히 기존 창비의 소설 중에서 영어덜트 소설로 <아몬드>의 성공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어서 출간된 <스노볼>은 성인과 청소년을 아우르는 영어덜트 소설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손원평의 <아몬드>와 문목하의 <돌이킬 수 있는> 이후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자신이 간절히 열망하고 원해왔던 성공이, 진정한 성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보통 사람들은 절망하곤 하지만 전초밤은 그러지 않았다. 특히 기존 체제에 대해서 반기를 드는 전초밤의 행보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