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노동 이야기
오승현 지음, 안다연 그림 / 개암나무 / 2020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첫 아르바이트는 19살, 수능이 끝난 직후였다.
아르바이트 중에서도 가장 만만하다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2013년 최저시급은 4,860원이었다.
그래서 그 시급을 고스란히 받았나고? 전혀 아니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500원 정도 덜 받았을 거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시급뿐만이 아니다.
휴게시간도 없었고 식사시간도 없고 주휴수당도 받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생애 처음으로 번 노동 소득이라는 것에 만족했었다.
그 후 불과 세 달 전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왔다.
편의점, 빵집, PC방, 웨딩홀, 어린이집, 헬스장, 영화관, 심지어 판촉 아르바이트까지.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7년 동안 내가 느낀 건 세상에 믿을 사람은 없다는 점과,
내 밥그릇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점이었다.
아르바이트를 미리 배워보는 사회생활이라고만 생각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그런 일을 겪지 않고도 알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노동 이야기》에 관심이 생겼다.
노동의 어떤 면을 얘기하고 알려줄 것인지 궁금했다.
이 책은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노동의 얼굴들
이 부분은 노동이라는 단어가 낯선 사람들을 위해서 노동의 정의와 역사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
일반적으로 노동이라고 하면 누군가 또는 어딘가에 고용된 상태에서
경제적 대가, 즉 임금을 받고 하는 일로 정의하거든요.
그런 엄밀한 정의에서 보자면 공부는 노동이 아니죠.
공부가 노동인지는 나도 궁금했는데,
넓은 의미에서 노동은 사람이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하는 일을 말하고
좁은 의미에서 노동은 어딘가에 고용된 상태에서 임금을 받고 하는 일이다.
고로 엄밀히 말하면 공부는 노동이 아니다.
근로와 노동이란 단어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한다.
나 역시 '노동'이라는 단어보다 '근로'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곤 했는데,
사실상 노동이란 단어를 쓰는 게 맞다는 걸 깨달았다.
2장. 노동의 뿌리
노동이 뭔지 대략적으로 파악했다면 '노동'이란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바꿔야 할 때다.
특히 이 장에서는 노동조합, 즉 노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특히 2장을 읽으면서 내가 언론이 만든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 역시 노조와 그들의 파업을 굉장히 안 좋게 보고 있었다.
특히 지하철 파업이라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출퇴근을 하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노동자들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이기적이라고 탓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는 전형적인 '기업 중심 마인드'였다.
우습지 않은가?
월급쟁이 노동자인 내가, 내 걱정은 안 하고 사장 걱정을 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3장. 노동의 안부를 묻는다
이 장은 노동에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노동의 안부를 묻는다'라는 장 제목을 보고 몇 년 전 유행했던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인사가 생각났다.
한국의 노동 시간이 세계적으로 굉장히 긴 편에 속한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노동자의 입장으로서 이는 변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분명히 이에 반발하는 기업 중심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 5일 40시간 근무제가 도입될 때 얼마나 많은 반발이 있었는지 기억하는가?
그러나 현재 그 사람들이 주장했던 문제들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성벽 안의 사람들과 성벽 밖의 사람들을 누가 나눴을까요?
안팎을 나눈 것은 성주이자 성 그 자체인 자본입니다.
소설 창작 수업의 일환으로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에 대해 깊이 다룬 적이 있었다.
그때도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용과 싸우다 화해하는 것으로만 영화를 감상하지 말고, 이 둘이 적대적인 관계가 되게 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노동문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성 밖에 있는 소외된 비정규직이 높은 임금을 받고 대우받는 정규직과 싸울 것이 아니라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
4장. 너희들이 노동자다
멀리서 왔다. 드디어 책 제목이 진가를 발휘할 때다.
1,2,3장은 성인인 내가 읽어도 마냥 쉽지만은 않은 얘기였다.
청소년이라면 더 어렵게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나도 생일이 지나기 전인 두 달 전에는 청소년에 속했다.
2017년에는 절반 가까운 청소년이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고 한다.
2014년에서 2017년까지 17.5%가 증가한 것을 보면 2020년 현재 더 증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밖을 벗어난 청소년들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 경험하는 일이고 당연히 서툴고 낯설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그런 청소년들을 이용하는 악덕 업주는 많다.
이 책에서는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궁금했던 점을 QnA 형식으로 쉽게 풀어냈다.
청소년이 아님에도 나 역시 노동자이기에 많이 배워가면서 읽었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청소년 시절부터 배울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항상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다만 노동에 대해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려고 하다 보니 내용이 살짝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쉽게 풀어내려고 노력한 부분들이 보였다.
특히 스마트폰 활용을 잘하는 아이들을 위한 책답게 큐얼 코드도 중간중간 삽입해 지루할 수 있는 내용을 잘 환기해 준다. 이미지나 삽화, 그래프와 같은 시각적인 자료도 잘 활용한 것이 돋보인다.
20살이 된 후 학교에서 배워왔던 지식들이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세금이나 정치, 노동 등에 대해서 알려주는 수업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아직은 그런 과정이 많이 부족하기에 지인이나 책의 도움으로 배워야 한다.
이런 책들이 더욱 많이 출간되어 그동안 어른들의 문제라고 치부되어 왔던 노동 문제가 더 활발히 논의되길 바란다.
미래는 성장할 청소년들에게 달려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