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취소
호영 지음 / 읻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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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트랜스젠더로 부르는 것은 자신의 삶과 신체를 창조의 대상으로 삼은 조물주들, 투명한 레이저가 가득한 사무실을 떠들썩한 놀이터로 만드는 익살꾼들,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는 위대한 실천가들의 계보에 나를 기입하겠다는 뜻이다.❞

퀴어는 존중하면서 트랜스젠더는 인정하지 않았던(감히 내가 뭔데.. 반성하고 있습니다 어쨌든요..) 나는 이 책을 읽고 완전히 변했다. 그러니까 이분법의 세계에 완전히 물들어있던 어제는 접어두고 한영 번역가이자 트랜지션 중인 작가님처럼 ‘trans’에 동참할 수 있었다.

라틴어에서 유래한 접두사 ‘trans’는 ‘너머’, ‘가로질러’, 또는 ‘다른 쪽에 있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때까지 대충 ‘~을 바꾸다’겠거니 하고 짐작만 했는데 역시나 내가 틀렸다. 외모와 이름만 보고 대충 성별을 특정하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도 전에(예를 들어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등등 일상적인 것) 남자친구가 있냐고 대뜸 물어보던 행동도 틀렸다. 트랜스젠더를 정신병자로 여기고,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역시 틀렸다.

그러니까 전부 취소.

너머에 있는 사람들은 원래 잘 모른다. 그저 내 앞길에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하고 만약 방해가 된다면, 어쩔 수 없이 극단적으로 혐오하게 된다. 투쟁하는 목소리는 그렇게 묻혀버린다. 기어코 상대를 변형하고자 하는 그 목소리, 몸짓, 생각⋯ 이런 것들에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무례하게 단정 짓는다

두 달 전쯤에 참여했던 두 개의 북토크에선 ‘피해자성’이 언급됐다. ‘아마 피해자니까 웃지도 못할 거야.. 참 불쌍하지.’와 같은 유추. 이러한 유추로 우리는 서로에게 참 많은 프레임을 씌우고 있었다. 프레임이 그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인간은 단 하나의 모습으로 절대 존재할 수 없다. 주위 환경이 바뀔 때마다 해내는 역할과 때론 강요되는 역할이 결코 동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것도 ‘전부 취소’돼야 할 것들.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앞으로 바뀌어야만 할 것들에 대해 또 생각했다. 그리고 ‘응 그래도 안 변해~’라는 말을 누군가 한다면 ‘호박잎 다듬는 법을 가르쳐 주는 할머니의 정확한 사랑도 모르는 놈은 조용히 하라고 반박해야지-‘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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