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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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달고 신 것으로도 녹일 수 없는 나쁜 생각들이 있잖아.

직장생활에 어느 정도 길들여지면, 온갖 부조리함과 부당함에서 나를 지키려고 꽤 다양하고 많은 시도들을 해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나를 짓누르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차라리 내가 현실에서 추락하는 것이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겨질 때, 올라가는 옥상이 있다.
그 옥상에서 주인공은 오늘도 혼자 에어컨 환풍기 뒤에 숨어 울면서 제발 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다정하게 머리를 안쪽으로 기울이고 엉킨 실 같은 매일매일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함께 고민해주던 운명의 마녀들
같은 직장 선배 언니 셋이 모두 결혼하고 떠난 좆같은 직장에 혼자 남은 주인공.

주인공은 어떻게 그렇게 갑작스럽게 그리고 셋 다 모두

온 천지에 오로지 한명뿐인 운명의 혼인 상대를

만났는지 그 비밀을 알고 싶었고, ‘규중조녀비서’라는 고대의 주문서를 전수받게 된다.

영기가 깃든 북쪽 산을 강 건너에서 바라보고 있는 회사 옥상에서 마침내 운명의 상대를 소환하는 주인공.

기이한 오컬트 의식 끝에 마침내 주인공의 온 천지에 오로지 하나뿐인 운명의 상대가 나타나는데!

—스포 방지를 위해 줄거리는 더 이상 쓰지 않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은 발음이 밝고 동글동글한 작가의 이름만큼이나 사랑스럽다. 인물들은 지극히 내 주변의 인물들이면서 배경과 이야기는 내가 발 붙이고 있는 현재 현실의 이야기면서도 항상 전개되는 이야기는 새롭고 놀라우며 결말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다.
달콤한 디저트로도 위로받지 못하는 운명의 상대가 너무나 절실했던 힘든 주인공에게 정세랑 작가가 짝지어준 남편은 읽을수록 너무나 탐나는 진정한 소울메이트여서 ‘아, 나도 하룻밤만!’이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부럽다. 나도 저런 운명의 상대를 만날수만 있다면 강남 높은 빌딩 옥상에서 생리혈로 주문진을 그리는 정도가 아니라 소복입고 입에 칼을 물고 칼춤도 출 수 있을텐데......

너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모든 사랑 이야기는 사실 절망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그러니 부디 발견해줘. 나와 내 언니들의 이야기를. 너의 운명적 사랑을.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기이한 수단을.
옥상에서 만나, 시스터.

우리 부디 옥상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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