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 - Jeon Woochi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초등학생들은 즐겁게 볼 만한 한국형 히어로. 최동훈 감독의 인맥 자랑용 영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인 - Nine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여배우들 얼굴 보러 가세요. 그게 목적인 영화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라노말 액티비티 - Paranormal Activit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별로였던 이유는 우선 이 작품이 별로 무섭지 않다는 거다. 무섭다, 라는 것은 주관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 영화를 무서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이 쾅 닫히고, 악마의 발자국이 찍히고, 보드에 악마가 무슨 단서를 남겨 놓는 게 왜 무서운가. 정말 무서운 것은 우리의 상상 속에 있는 것이지 우리가 보고 듣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파라노말 엑티비티>는 블레어 윗치 프로젝트가 보여준 페이크 다큐의 형식을 차용하되, 정말 영화적인 상황을 설정해 놓고 있는데 악령,하면 떠오르는 클리셰들이 고대로 들어가 있다는 거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는 둥, 악령을 화나게 하지 말자는 둥 하는 시나리오 대본 대사같은 다이얼로그들. 아. 진짜 졸렬한 기획 아닌가.

페이크 다큐를 표방했으면 진짜 다큐스럽게나 만들지. 영화에서 나올 법한 싼티나는 아이디어는 다 집어놓고 녹화 카메라 하나 설치해놓고서는 실제 있었던 일이야, 무섭지~ 이런다. 황당하다. 남자는 보통 집에서 쓰는 카메라보다 큰 카메라(기계치여서 정확하게 뭐라고 써야 할지를 모르겠다 젠장)를 사놓고서는 '세일해서 싸게 샀'단다. 웃기다. 그러고는 여자가 무슨 일이 일어나면 카메라 부터 잡고 뛰어간다. 집 안에서 카메라 들고 뛰어가는 남자를 보고 나는 솔까말 엄청 여자가 불쌍했다. 여자를 정말 사랑하면 저렇게 찍는 것에 집착할 수가 없다(고 여자인 나는 확신한다). 아니 뭐 찍어서 악령이 나간다면야 상관없지만 기록에 남기면 뭐하나. 하긴 여자도 할 말이 없는 게 같이 동거를 하는 사이인데도 그간 악령 얘기는 입도 뻥끗 안했으니 피차일반이네.

딱 보면 비급도 아니고 씨급 배우들이 등장해서 유치한 대본에 맞춰 부끄러운 연기를 펼치는 인터넷 영화같은데 이걸 페이크 다큐라면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비밀리에 판권을 샀다는 둥 하는 이야기로 극장에 걸고 흥행 몰이를 했네. 아. 정말 장삿속 하나는 아주 끝내준다. 울 나라 극장 예고편은 또 얼마나 웃겼다고. 관객들을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해서는 무서워하는 장면 보여주면서 광고하던데? 이런 걸 찍어 놓고 영화 감독입네 하는 거, 좀 부끄러울 것 같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셜록 홈즈 - Sherlock Holm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가이 리치 감독은 진중한 작품보다는 약간 촐싹맞고 정신없는 영화에 잘 어울리는 연출을 하는 사람이다. 정적인 작품이나 진지한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보다는 약먹은 것 같은 캐릭터, 쉴 새 없이 뻥뻥 터지는 영화 연출에 잘 어울리는 감독이다. 그는 자신의 성격에 맞는 작품을 맡아 잘 연출한 셈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나의 홈즈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보다는 키가 크고 <아이언맨>이 생각나는 그의 캐릭터보다는 진중하며 회색빛 영국 하늘이 생각날 만한 분위기를 가졌고 여자에게 빠져서 헬렐레~ 하는 것보다는 냉소적이길 바랐다. 그런데 이 영화의 홈즈는...

쥬드 로가 왓슨인 것도 안습이다. 머리카락 숱이 적다고는 하지만 왓슨이라니. 머리카락을 더 심게 하고 홈즈를 시키지 그랬어 ㅠ.ㅠ 로버트 다우니 쥬니어가 왓슨인 게 차라리 더 어울리지 않나. 촐싹거리는 왓슨으로 캐릭터를 변형시킨 건 있을 수 있다 해도 촐싹거리는 홈즈라니... 이건 아니잖아 ㅠ.ㅠ 캐릭터는 둘째치고 흑마술사와 홈즈의 추리라니.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난생처음 본다. 동적인 홈즈를 그리기 위해 세계를 정복할 야심에 차 있는 안타고니스트를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나본데 악당이 나올 때마다 지루해 미치는 줄 알았다. 매력이 없잖아, 매력이. 홈즈의 왓슨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과 집착이 동성애같아 보일 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세계에서 제일 지루한 악당이 등장해서 말도 안되는 짓들을 벌이니까 이건 뭐 잘 수밖에 없었다. 졸린 것도 악당의 흑마술 때문인걸까?ㅎㅎ

모리아티 교수와 홈즈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린을 연결시키는 재주도 정말 헐리웃스럽다. 한마디로 '싼티'나는 아이디어라는 것이다. 모리아티 교수가 나오는 건 2편을 예상하고 만드는 입장에서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아이린을 홈즈와 모리아티 교수 사이에 두어서 영화 전체를 억지스럽게 만든다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다. 홈즈는 여성에게 냉소적이어야한다구. 그래야 홈즈지... 이건 뭐 키 작고 마약 하는 제임스 본드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ㅠ.ㅠ

나의 우아한 영국 신사, 섹시하고 냉철하고, 바이올린을 켜는 신경질적인 예술가적인 면모와 복싱으로 몸을 단련한 운동 선수같은 면모가 섞인, 또 동시에 화학자이면서 수학자여서 논리적이나 때로는 셰익스피어를 인용하는 문학가적인 면도 보이는, 여자에게는 냉소적이지만 왓슨에게는 다정한, 약쟁이어서 폐인같지만 그래도 질서가 있는, 그러니까 한 마디로 완벽한, 나의 홈즈를 돌려줘. 엉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로드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은 영화 먼저 봐서는 안 되고 소설을 읽고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소설을 읽은 사람은 영화를 봐도 괜찮다.
이 영화가 소설보다 더 걸작이냐, 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하지만 소설과 별개로 걸작이냐, 라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소설에 충실하게 영화화했다면 이 영화의 수준 이상을 바랄 수가 없는 정도로 괜찮은 작품? 그 정도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 괜찮다.

활자 매체가 영상 매체보다 위대한 까닭은 그 무엇도 우리의 머릿속에서 상상한 것만큼 근사할 수가 없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소설 <더 로드>는 진심으로 위대했다. 그러나 추상적으로만 존재했던 머릿 속의 이미지들이 확실한 영상으로 등장하는 것을 본 순간 영상 매체가 활자 매체를 (부분적으로는) 이길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 중요한 것은 소설 <더 로드>의 맥락이다.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는가, 하는 문학적인 부분의 핵심들이 영화화하면서 생략되어 버린다면 이 영화가 재현해 놓은 영상은 표면적인 형식으로만 그칠 뿐 아무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소모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영화 <더 로드>는 세기말의 지구 위에서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면서 계속 바다를 찾아 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소설에서 말하고자 했던 인간을 인간이고자 하는 그 무엇에 대해 묻고 있다. 도대체 왜 인간은 인간일 수밖에 없는가.

의식의 흐름 수법이 공공연하게 등장하는 소설과 달리 영화는 악몽처럼 지구의 종말을 경험하는 게 아니라 악몽처럼 행복했던 평범한 날들의 꿈을 꾸는 아버지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잘 이어주고 있다. 행복했던 날들부터 시작해서 갑작스럽게 지구의 종말이 오고 아기를 낳는 것이 행복이 아닌 악몽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그 꿈에서 깨면 더 악몽같은 현실을 견뎌내게 하는 유일한 존재인 아들이 아버지의 곁에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신이 아들을 준 게 아니라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기서 아들은 단순히 피붙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버지는 그 모든 순간을 자신과 함께 할 누군가가 있다는 이유 하나로 버틸 수 있었고 아들은 그에게 희망이었다. 아버지는 희망의 문을 스스로 닫을 수가 없었고 그런 점에서 죽음을 선택하지 못해 죽음이 자신을 선택하기를 바라며 떠나간 아내조차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 인간이 인간을 먹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사람이기를 선택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이기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들은 이기적인 아버지의 모습에 실망하기도 하고 그를 꾸짖고 질책하기도 한다. 아버지는 아들 때문에 인간 이하의 인간으로 하락할 수가 없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우리는 가슴 속의 불을 옮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미쳐가고 있는 세상에서, 아버지가 들려줄 수 있는 유일한 동화같은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로 인해 꿈을 꾸고 아버지는 아들로 인해 인간일 수가 있다. 그런 그들의 애정은 배타적인가? 아니다. 진정한 애정은 배타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코멕 맥카시는 말한다. 끝부분에서 나는 수능시험 때문에 열심히 읽었던 단편소설 <화수분>이 생각났다. 얼어죽은 아비와 어미의 시체 발밑에서 놀던 아기를 지나가던 사람이 달구지에 태워 가는 그 결말 말이다. 절망적인 회색빛 지구에서, 나무가 쓰러지고 시체를 파먹는 이 땅에서 희미하게나마 희망의 불씨를 옮기는 사람이 있어 다행입니다, 라고 말하는 영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