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퍼홀릭 - Confessions of a Shopaholic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야기는 어떻게 되든 좋았다. 아일라 피셔의 귀여움. 그리고 휴 댄시의 영국 악센트 묻어 나오는 말투와 진실해 보이는 눈동자. 그리고 구찌 핸드백과 애플사의 노트북, 버니스 뉴욕의 쇼윈도우들. 그것만 봐도 좋았던 거다. 대체 이 영화에 뭘 기대할 수 있을까. 그냥 2시간 동안 쇼핑하듯 영화를 소비하면 그 뿐인 것을. 미 개봉시 엄청 혹평이 쏟아졌다고 하는데 <섹스 앤 더 시티>를 비난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도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도 결혼하려고 난리를 치는데 <쇼퍼홀릭>의 레베카는 그럼 나 좋다는 남자를 거부하고 열공했어야 하냐?ㅋㅋ 캐릭터야 구시대적이든 뭐하든 카드 명세서 때문에 충격 먹고 적금을 깨거나 친구에게 돈을 꿔 본 적이 있는 2-30대 여성이라면 이 영화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나는 된장녀인가? 노노. 솔직히 나는 명품이라고는 쌈 싸서 먹을래도 없다. 그러나 영화 속 레베카와 항목만 다를 뿐이지 씨디니 공연이니 책이니 미친듯이 질러 버려서 카드값 펑크난 적은 꽤 있다. 누구나 소비 항목만 조금씩 다를 뿐 '쇼퍼홀릭'이 되어 버린 경험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이 영화에, 아니 레베카에 닥치고 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살면서 소비는 우리를 표현하는 가장 손쉬운 도구가 되어 버렸다. 잡지와 TV와 명품 디자이너들은 가방이나 옷만 사면 자신감 있고 시크하게 바뀔 거라고 말한다. 레베카의 말처럼 뭔가를 사들인 당시에는 세상이 아름답다. 그러나 그건 잠깐일 뿐 카드 명세서의 고통은 영원하다.

카드를 긁어댈 때는 그렇게 아름답던 세상이 카드값을 갚지 못할 때는 지옥으로 변하는 경험. 바로 그것이 이 영화의 뼈대다. 가방이나 드레스 한 벌로 특별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가방에 맞는 구두가 필요하고 드레스에 어울리는 악세서리도 필요하다는 것만을 깨닫는 것, 모든 것이 네버 엔딩 스토리임을 깨닫는 것... 그게 쇼핑의 실체인 것을. 그러나 이 영화는 소비의 쾌락과 고통을 집어내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손쉽게 신데렐라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집중한다. 뭐같지도 않은 기사 몇 개로 스타덤에 오르고, 까칠한 편집장은 남친이 되고, 또 알고 보니 이 남자는 귀족 집안이더라~는 얘기. 쇼핑 중독은 '고백'하면서 치유되고 카드빚은 명품 팔아서 갚고, 뭐같지도 않은 기사 덕분에 그토록 원하던 잡지사에서 스카웃 제의까지 오더라~는 얘기. 난 부럽던데? 저 정도면 신용불량자 할 만한데 싶어서. 직장 있어, 부모님 있어, 친구 있어, 쇼핑 중독자 모임도 있어, 지적이고 잘생기고 집안도 좋은 남친있어... 대체 뭐가 문제야?

인생이 이 영화처럼 쉬웠으면 좋겠다. 아일라 피셔가 연기한 레베카처럼 멍청한 짓을 해도 사람들이 좋아하고 멍청한 글 써도 사람들이 좋아하고 멍청한 일을 해도 친구가 수습해주고 멍청한 변명을 해도 남친이 생기고 멍청하게 빚을 져도 부모님이 도와주고... 아. 정말 세상 참 편하겠다. 이 영화가 혹평받은 이유는 바로 그거다. 레베카는 모든 일이 너무 쉬웠다. 그러나 현실은 이번달 카드값이 연체가 돼도 이 험한 세상에는 나 혼자 그걸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거다. 사람들은 레베카가 부러워서 열 받은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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