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 보구서 깜짝 놀랐다. 허리를 다쳤지만 꾸역꾸역 극장가서 2시간 30분을 앉아 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오스카에서 각색상은 꼭 받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헐리웃의 각본가들은 밥 대신 이슬을 먹고 사나? 어쩜 이렇게 제대로 각색을 할 수가 있는 건지... 헐리웃 각본가들은 수영장 딸린 집에 산다더니만 그럴 만하다. 이 이상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썼더라. 다만 2시간 30분은 좀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데이빗 핀처는 <조디악> 때부터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연출하고 서서히 끌어 나가는 연출과 긴 러닝타임에 호기심을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는 병실에 누워 있는 임종 직전의 데이지가 딸에게 벤자민 버튼이라는 남자가 쓴 일기장을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허리케인이 왔다 갔다 하는 그곳의 날씨부터 시작해서 거꾸로 가는 시계의 탄생 신화(?)까지 모두 소설에는 없는 설정들이었다. 죽음 목전의 여인이 한 남자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는 식으로 전개되는 것 자체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충격적일 정도로 놀랐던 것은 원작에서는 벤자민이 부모와 함께 사는데 이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그를 복지시설에 버리는 것으로 나온다는 거다. 복지시설이라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벤자민은 노인의 모습을 하고 태어나 버려지고 그 시설에서 더욱 더 가깝게 죽음을 목도하게 된다. 그것이 그의 삶에 분명한 영향을 준다. 삶은 유한하다는 것을 너무나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이 실려 있는 피츠제럴드의 단편집은 모두 젊음의 무지함과 사랑의 유한함, 노인의 지혜 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너무나 늦게 깨달은 나머지 중년이 지나고 노인이 되면서 그들은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열정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죽음을 맞는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노인들은 젊은 시절의 자신에 대한 미련을 지우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흔들 의자에 앉아서 추억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이미 늙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자민 버튼은 모든 것을 역으로 경험한다. 삶의 유한성, 젊은 시절의 허무함... 이 모든 것을 알기에 그의 삶은 다른 이들과 다르다. 그러나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다른 삶과 똑같다.  

 소설은 영화보다 좀 더 비정(?)하고 허무하다. 벤자민은 점점 젊어지면서 아내에 대한 애정도 잊는다. 젊은이들은 대게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다르다. 어떻게 보면 미국적이고 헐리웃스러운 교훈들을 늘어놓는 면이 많다. 우선 벤자민이 머물던 복지시설의 모든 노인들은 물론이며 가슴에 벌새 문신을 새긴 '아티스트'이자 배 선장과 선원들의 이야기도 원작에는 없는 것이다. 꽤 의미있는 소재로 나오는 벌새의 상징도 분명하다. 벌새의 엄청난 날갯짓이 인간의 삶과 연결되는 것이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 벌새를 새기고 있던 배 선장의 삶이 주는 의미도 있고. 어쨌든 이 영화는 모든 인물, 모든 소재들을 통해 삶에 있어서 빠른 것도 늦은 것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 한다. 매 챕터마다 반복되는 긍정적인 메시지들은 지루함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원작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따스함에 어느 정도는 세뇌당하는 느낌이었다.

이 영화가 따스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사랑의 영원성을 긍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벤자민은 사고를 당한 데이지가 젊은 여자의 신선한 육체를 보고 부러움에 눈물을 흘리자 선장의 말을 인용해 '욕을 하고 부정해도 끝이 오면 결국 그냥 보내야 한다 '고 말한다. 데이지는 벤자민에게 '영원한 것도 있다'고 말한다. 피츠제럴드는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에 열심이었다. 젊음은 유한하고 그래서 허무했다. 사랑도 사라지고 그로 인해 인간은 패배감에 젖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데이지는 영원히 벤자민을 사랑한다. 그녀가 어린 벤자민을 안고 있는 모습은 팽팽한 얼굴의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보다 감동적이다. 피츠제럴드의 은은한 시니컬함에도 감탄했지만 이 영화가 말하는 것에 더 마음이 가서 지속적으로 반복 주입되는 교훈에 신물을 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는 강가에 앉아 있는 것을 위해 태어난다. 누군가는 번개에 맞고 누군가는 음악의 조예가 깊고 누군가는 예술가이고 누군가는 수영하고 누군가는 단추를 잘 알고 누군가는 셰익스피어를 알고... 누군가는 어머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
나는 뭘 하도록 만들어진 인간일까. 나도 너무 늦지 않은 걸까... 묻고 싶어진다. 

한편으로는 이 작품이 너무 잘 만들어놔서 먹기 부담스런 음식같이 부담스럽다고 느꼈다. 약간의 여백이 있었어도 좋았을텐데 굳이 하나하나 다 짚고 넘어가고 모든 인물들이 뭔가 한 마디씩 하고... 꼭 그러지 않아도 됐을텐데. 다만 이 영화가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는 의견에는 반대한다. 친구는 이 영화 예고편에 낚여서 케이트 블랑셋과 브래드 피트의 사랑 이야기가 주가 되는 줄 알았는데 지루한 인생 얘기였다고 분개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 영화, 사랑의 영원성을 긍정하는 얘기니까 그게 메인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영원히 젊을 순 없다. 하지만 영원히 사랑할 수는 있다... 이 이상 아름다운 사랑 얘기가 어딨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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