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을 맞아 파티마 국제 순례 성모상이 2017년 9월에 대구교구의 한 성당에 오게 되었다. 그곳에서 파티마의 성모님을 처음 만났다. 3년 후, 파티마의 기적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고 파티마의 발현에 대해서 관심을 더 갖기 시작했다. 그 외의 교황청이 인정한 발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교황청의 인정을 받지 못한 발현과 더불어 발현 주장이 거짓인 사례도 함께 알게 되었다. 결국에 그 거짓 발현을 주장한 이들은 이단으로 발전되었다는 씁쓸한 결말도 함께 말이다.
4월 선정 도서 중, 관심사 중의 하나인 파티마에 관한 수녀님의 회고록에 이끌려, 이 책과 함께 사순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이 책은 루치아 수녀님의 회고록이기에 파티마의 발현에 관한 내용보다는, 루치아 수녀님과 함께였던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에 관한 서술이 대부분이다. 한 편의 영화나 파티마 성모 발현에 관한 문서로는 전혀 알 수 없고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기에 흥미롭고 때로는 경건한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회고록 속의 히야친타에게 본받을 점이 너무나도 많았고, 때로는 부끄러웠다. 하느님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희생을 하는 아이들. 세계 1차 대전 중이던 그 당시 먹을 것조차 부족했을 텐데, 자신의 점심을 기꺼이 내주고 자신의 희생과 고통을 기쁘게 여기는 모습은 현대사회에서 쉬이 기대하기 어려운 모습이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히야친타가 보여주는 모든 행동은, 나는 지금 잘 하고 있는가의 척도로 삼을 만큼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 성체 조배를 하며,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나는 지금 잘 하고 있는가. 내 삶에 '나'의 비중이 더 커서, 주님을 위한 일을 미루지는 않았을까. 지난날 나는 하느님을 위한 일 보다 나를 위한 편안함을 택하는 일이 많았음을 깨달았다. 수녀님 회고록 속의 세 목동들에게는 '나'를 위한 일은 없었다. 주님을 위한 일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반복하여 죄를 짓는 행동을 위해, 죄인들을 위해 세 목동은 끊임없이 희생하고 기도했다.
책을 읽으며 안타까웠던 건, 파티마 성모 발현이 있던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세계 곳곳에선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평화 속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한반도와 해상 곳곳에선 늘 경계를 늦추지 않고 국가를 지키기 위해 군인들이 애쓰고 있음을 인지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인간이 일으킨 전쟁은 수많은 죄 없는 이들을 희생시키며 아름답던 자연과 건축물을 다시금 볼 수 없게 만든다. 인권의 가치가 상승된 현대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평화와 공존을 위해 발맞춰 함께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미사 중 보편 지향 기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가, 이렇게 간절하게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