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길을 찾다
문재상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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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여행 도서가 유행한 이후로 누군가의 여행기를 접한 건 오랜만이다. 이 책의 저자 신부님이 40일 동안 겪은 일은 나로서는 도전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더욱 값진 독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신부님께선 길 위에서 착한 사마리아인들을 꽤나 만나셨고 그들의 많은 도움으로 40일의 무전여행을 잘 마칠 수 있었는데, 당시 학사의 신분을 감추고 평범한 대학생이라고 했음에도 어떻게 저런 사람들이 나타나 기꺼이 도움을 줄 수가 있는지 팍팍한 현대에 찌들어 나 스스로를 챙기기에도 바쁜 현실을 반성을 하게 되고, 변해버린 나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다. 내가 책을 읽는 내내 신부님을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들의 존재를 의심했던 건, 무전여행기의 대략적인 연도를 2005년이라고 추측해보자면, 16년 전의 인심과 근래 사람들의 인심에는 꽤나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점점 더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사회를 이루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사회 초년생을 만날 때마다 느끼기에 요즘도 기꺼이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을까 의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 이야기를 해보자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호감이 생기는 사람을 만나면 나를 열어 내가 그에게 할 수 있는 호의를 보이곤 했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오히려 많아 상처받는 날들이 많았다. 그걸 몇 년이고 반복하고 나서야 처음 만나는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열어보, 베풀 수 있는 호의에도 선을 긋기 시작했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기에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고, 1~2년은 족히 봐야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이런 내가 베풀어야 할 때와,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 할 때 늦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고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책을 읽고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길 위의 착한 사마리아인이 존재할까 의심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신부님이 길 위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조건 없는 베풂을 받은 데에는 분명 그분의 뜻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의심의 결말은 스스로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보면 마침표가 찍혀질까. 내어 맡김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걸 책을 읽고 나를 돌아보며 깨닫게 된다.


함께 여행한다는 건 서로를 알아 가는 길. 여행을 하면 사람의 본 모습이 드러난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런 걸까. ‘용태와 나는 이 40일의 여행이 끝나고도 예전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여행에서 때때로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하더 라도, 그 모습 역시 그 사람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여행을 할 때 비로소 본모습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습 또한 그 사람의 일부라는 생각. 이전까지 내게 보여 주었던 모습은 가식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을까. 친구란, 그 모습 까지도 감싸 주는 사이가 아닐까.

-p56

언제나 그랬지만, 우리가 도움을 받는 것은 부자에게서가 아니었다. 아주 평범한, 가진 것도 별로 없는 분들에게서였다. 동네에서 만날 수 있는 빵집 아저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작은 식당의 아주머니, 성당에서 마주치는 형제자매님들, 이런 분들의 도움이 우리에게 훨씬 따뜻한 감동을 주었다. 부유한 이가 아니라 없는 이들이 더 쉽 게 내어 줄 수 있다는 역설. 없는 이들이야말로 없는 이들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강생의 신비인가, 낮아져야, 비로소 도울 수 있다.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가난은 우리를 향한 그분의 끝없는 사랑에서 오는 것.

-p158

그렇게 36일간의 동반은 막을 내렸다. 이제 용태는 용태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걸을 차례. 생각해 보면 나만 길 위에 있는 것이 아 니라, 용태 역시 길 위에서 나름의 여행을 계속하는 것이겠지. 우리 네 삶이란 원래 끝없는 길을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리라. 끝도 보 이지 않는 이 길, 이 먼 길 끝에서 무언가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희 망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 아니던가. 벗이여, 그대의 길을 잘 걸어가시기를. 나 역시 내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려네.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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