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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속삭임 - 제2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ㅣ 보름달문고 93
하신하 지음, 안경미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월
평점 :
눈부신 과학 발전의 산물이자 동경의 대상임과 동시에 인류의 위기를 내포하기도 하는 우주개발. 우리에게 우주는 끝을 알 수 없는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하면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의 유한함에 대한 필수불가결의 대안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간에게 있어 우주가 지닌 이중성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경계를 아련하게 넘나든다.
제2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우주의 속삭임’은 경이로우면서도 한편으론 두렵기도 한 미래 사회의 정경을 유려한 필체로 담아낸 공상과학 소설이다. 이 작품은 ‘반짝이는 별먼지’ ‘타보타의 아이들’ ‘달로 가는 길’ ‘들어오지 마시오’ ‘지나 3.0’ 다섯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유기성을 띠는 것은 아니지만, 지구의 어느 낡고 작은 집에서부터 드넓은 은하계를 넘나드는 장대한 스케일로 사랑과 상실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점이 닿아있다. 지구와 우주를 연결하는 엘리베이터,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는 로봇,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인간과 로봇의 결합 등 익숙한 SF 소재를 가지고 예측 불가한 감동을 선사한다는 점도 그렇다.
가장 먼저 ‘반짝이는 별먼지’는 작은 장애로 인해 친구들과 소통이 힘든 외로운 소녀에 관한 이야기다. 소녀의 유일한 대화 상대이자 가족인 할머니 앞으로 어느 날 이상한 손님이 찾아오고, 이들의 삶은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최첨단 스마트 기기가 넘쳐나는 시대에 고물 라디오만 듣고 있는 할머니가 오랫동안 간직하던 우주적인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믿음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를 깨닫게 된다. 또 할머니와 소녀가 선사하는 우주처럼 깊은 가족애에 시큰하면서도 따뜻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 ‘타보타의 아이들’에서는 타보타라는 이름의 행성에 사는 로봇들을 만난다.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으로 개발 중이었던 이곳에서 진척이 없자 연구원들이 모두 떠나 버린다. 남겨진 건 인간을 돕던 로봇들뿐. 주인공 티티는 인간과의 친밀한 교감을 위해 언어와 감정이 프로그램된 로봇으로, 인간미를 상실한 척박한 이곳에서 기적 같은 희망을 만들어내며 인간보다 더 숭고한 행동으로 눈물샘을 자극한다.
비록 티티처럼 적극적이지도 않고 감정도 없지만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하는 동료 로봇들에게선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진한 동료애를 느낄 수 있다. 남겨진, 어쩌면 버려진 아이들이 선보이는 놀라운 책임감과 희생정신은 두고두고 가슴에 새기고 싶은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
그런가 하면 세 번째 ‘달로 가는 길’에서는 인간과 로봇의 공생, 인간과 로봇 사이의 허물어진 경계가 가져올 풍경을 그린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던 소년에게 생기는 변화와 충격적인 진실을 좇다 보면, 기술의 발달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것이 과연 참된 행복일까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미래에 인간은 고도화된 기술을 통해 지금보다 훨씬 길게 생명을 연장할 수 있으며, 죽은 자식과 똑같이 생긴 로봇을 키우며 위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나이가 들고 죽음을 맞이하는 건 자연의 순리인데, 로봇으로 죽은 이를 대체한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로봇의 입장으로 담담하게 풀어낸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편 ‘들어오지 마시오’는 다섯 편 중 가장 발랄한 편이다. 주인공 현우는 또래의 괴롭힘에 시달리는 소년이다. 나쁜 이들의 괴롭힘을 받는 길고양이처럼 폭력을 피해 매번 도망 다니기 일쑤인 현우에게 어느 날 신기한 외계 생명체가 찾아오고, 현우는 뜻밖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학교폭력이라는 어두운 소재를 SF적 상상력으로 밝게 풀어낸 이 작품은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보호하고 부당한 방법을 쓰지 않으려는 현우의 고운 마음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이다. 용기가 부족해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마냥 피하기만 하고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던 현우가 ‘우주의 행운’을 통해 한 뼘 성장하고 행복을 찾는 과정이 짠하면서도 기특하다.
다섯 편의 대미를 장식하는 건 가장 극적이고 깊은 감정의 파고를 펼쳐내는 ‘지나 3.0’이다. 태양 대폭발로 인해 태양계 행성에서 더는 살 수 없게 된 암울한 미래. 지나와 가족은 우주선에 몸을 싣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간다. 몸이 약한 엄마와 남동생은 동면기에 들어가 있고, 지나는 우주 공학자인 아빠를 도와 언제 끝날지 모를 여정을 하게 된다.
우주의 시간은 덧없이 흘러간다. 10살 어린이였던 지나는 어느새 성인이 되고, 잠들어 있는 엄마보다 더 나이가 들게 된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 끝을 모르는 항해에 의한 지나의 외로움과 불안감이 무겁게 마음을 짓누른다. 또 오랜 우주 생활에 약해진 몸은 기계와 결합할 수밖에 없게 되고, 지나는 지나 2.0을 거처 지나 3.0이라는 사이보그로 변하게 된다. 점점 로봇이 되어가는 자신의 몸을 받아들이며 견디는 지나의 모습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 진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우주에 대한 경외감이 깊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꾸준히 어린이책을 지어온 하신하 작가의 ‘우주의 속삭임’은 다채로운 이야기 속 빛나는 아이디어와 웅장하고 감동적인 서사로 읽는 이에게 무한한 영감을 선사할 멋진 소설이다. 안경미 작가의 간결하면서도 따스함이 가득 묻어 있는 그림은 소설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어린이 문학이지만 어른에게도 커다란 감명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니 꼭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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