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다른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강미 지음 / &(앤드)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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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이유로 방황하는 청소년들. 그리고 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싶은 어른들. ‘키 다른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는 이들의 어색한 첫 만남에서부터 서서히 발맞춰가는 동행이 되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소심한 성격과 작은 체구 탓에 늘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 살아가는 현, 가정과 학교에서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뒤 가해자로서 비뚤어진 삶을 사는 민철, 그리고 모범생의 밝은 겉모습과 달리 어두운 취미를 가지고 있는 진목. 각자의 이유로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세 소년을 상담하게 된 사람은 ‘호박벌’이라는 범상치 않은 별명을 지닌 발랄하고 적극적인 여성이다. 


호박벌은 자신과 인연을 맺은 다양한 사람들을 멘토로 초빙해 세 아이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문문, 아까시, 수달, 하쿠. 본명 대신 성별과 나이를 예측할 수 없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성별도 나이도 천차만별인 멘토들은 현, 민철, 진목과 서서히 교감하며 그들을 조금씩 변화시킨다. 

  

이 시대 청소년의 아픔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풀어낸 이 작품에서 작가의 시선은 현에게 가장 닿아 있다. 현은 어느 학교 어느 교실에나 한 명쯤 있을 법한 조용하고 존재감 없는 학생이다. 자신감이 부족해서 하고 싶은 말조차 제대로 못 하고 폭력의 피해자로 사는 삶을 자포자기한 듯 받아들이는 현의 모습은 꽤 진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때문에 멘토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자신감을 채우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현의 성장은 이 소설에서 주목을 끄는 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이 작품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이기도 가해자이기도 한 청소년들의 상황을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비교적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늘 분노에 차 있는 민철이 내뱉는 거친 욕설과 비속어를 가감 없이 담아내고, 이유 없이 폭력에 노출된 현의 상황과 여성의 신체를 불법 촬영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진목의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툭 묘사한다. 이러한 방식은 오히려 무방비 상태로 책장을 넘기다가 흠칫하게 되는 경험을 선사하기도 한다. 너무 태연해서 더 놀랍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불행한 영혼들의 멘토가 되는 이들이 완벽하고 성공적인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키 다른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의 특별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먼저 멘토들을 이끄는 리더인 호박벌은 겉으로는 너무도 낙천적이고 씩씩한 사람이지만 어린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로서 엄청난 아픔을 간직한 사람이다. 그녀는 가끔 주체 못 할 슬픔의 나락에 떨어지지는 순간을 맞이하면서도 계속 버티고 노력한다.


멘토 중 가장 연장자인 문문은 시력을 잃고 교사가 아닌 안마사로서의 새 삶을 살고 있지만 현명함은 더 깊어진 스승이고, 아까시는 말 못 할 폭력에 노출됐던 피해자로서의 과거를 간직한 채 숲 해설가로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 고아 출신으로 힘든 삶을 살았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는 청년 수달과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삶을 살다가 취업 현장에서 나락을 경험하게 되는 하쿠의 모습에서는 자립준비청년의 현실과 특성화고 현장 실습 제도의 민낯을 담아내기도 한다.



결국 멘티인 세 청소년뿐만 아니라 다섯 명의 멘토들 또한 치유되고 성장하게 되는 이야기. ‘키 다른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는 이렇게 각기 다른 상처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https://blog.naver.com/drew98/22337644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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