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오늘이 그날이군‘이었다. 외국어를 배우다 보면 드물지만 한번씩 그런 순간이 온다. 지겹도록 늘지 않는 실력에 지치는 단계를 극복하고 ‘그래도 계속하는 수밖에‘ 하면서 지속하다 보면 경험할 수밖에 없는 순간. 문장 하나를 만들어 이야기하는데도 버벅대던 실력이었는데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몇 개의 문장이 술술 입에서나오는 순간. 혹은 문장이 조금만 길어지면 버벅대던 실력이었는데, 긴 문장을 물 흐르듯 주르륵 읽게 되어 자신도 놀라는 그런 순간. 그것은 마치 간밤에 소리 없이 소복소복 쌓인 눈을 새벽이 되어 마주하게 되는 것과 같다. 묵묵하게 쉼없이 꾸준하게 지속하다가 어느 순간 빛이 밝아 오면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간밤의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 시간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결과물을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녹아 없어질 풍경임을 알아도, 마음 깊이 벅차오르는 그런뿌듯한 순간. 다시 찾아올 밤의 시간을 견뎌 낼 수 있도록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격려의 순간. 우리는 그 힘으로 지루하고고통스러운 과정을 계속할 수 있다. - P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