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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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히 사라졌다'고 나는 생각했다. 꼭 울고 싶은 것처럼 목이 메는 느낌이었다.


  -진리스 <어둠속의항해>



 진주,

어떤 이름들 속 헤아려본 슬픔 속 박힌 사랑의 잔상들.

우리에게 그저 다가오는 것들.

밀려오는 것들을 헤아려본다.

 


보지도 기억되지도 않는 것들 안에서 사료인 것들 또는 사료 아닌 것들을 뒤적인다. 시인의 글쓰기란 무릇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돌림노래 같을 거라 생각했는데, 때때로 어떤 이야기는 단지 그림자를 쫓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앞선 열의를 가지고 끝까지 미행을 계속한다. 어떤 그림자도 발자국도 남기지 못한 시간들에게.

 

마치 좋은 묫자리 집터를 둘러보는 것 같은 안부들이 콕콕 박힌다.

가벼운 농담처럼, 짓궂은 말재간처럼.

 

  “빛은 잘 들어옵니까,

               바람은 불어옵니까.”

 

 그리고 당신과 나 사이,

 같은 책상 위로 같은 꿈들이 홀로그램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회상 위를 천천히 헤어리듯이 읊조리는 글자들.  그리고 이내 메아리처럼 흩어지는 잔상들을 슬퍼한다.

 

그리워하고 싶다는 건, 그런 열의를 담은 기억들은 그런 것일까? 이미 존재하지 않는 이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것말이다. 사실은 그 사람이, 그 모든 잔상들이 오래전부터 구전되던 하나의 전설일 뿐이라면 어쩌지. 차마 자신이 직접 다 보지 못했던 이를 그리워한다는 것에 대해서 상념에 빠지게한다. 혹자는 상념이 상상력을 잘못 쓴 결과랬지만,이제는 그만 억울한 마음이 든다


 소중하고도 귀하게 품고 있던 걸순식간에 강탈당해그만 억한 심정, 어디가서 하소연 할 데도 없는 정황없는 상실 앞에서 어찌 할 줄 모른다. 잃어버린 것들의 나라에서 섬과 섬 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그 난처할 밖에 별 도리가 없다.


 이내 밀물이 밀려와 오가는 가는 길을 묻어버리면 그만 포기할?

 물론 다시 물이 빠지면 숨겨진 길을 본다는 희망이야 있겠지만, 다시는 그 찬 물이 빠지지지 않을 수도 있다. 영원히 댐 속에 갇혀버린 물길 앞에서 그럼, 엉엉 울어버릴까. 지적인 낙관주의로도 때론 되돌릴 수 없는 사건들이 있다.

 

 열세살 아이가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두발 자전거는 언감생심이고 뒷바퀴에 보조바퀴를 달고서도 불안해서 거듭 뒤를 돌아보던 때, 그 뒤에 있던 사람. 거듭 당부햇더랬지. 꼭 놓지 말라고 당부를 해놨어도 페달을 밟는 순간 모든 걸 잃어버릴 것만 같다. 아이는 언젠가 난생처음 워터파크 미끄럼틀을 탈 때의 불안을 복기시킨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게 늘어선 또래 아동들 사이로 자신만이 열외일 것 같던 때로. 분명히 입장하면서 거대한 원통형 미끄럼틀 안으로 슬라이딩에 흥이났지만 신나게 질주하는 물길과 일체 될 거란 흥분 앞에서도 고개를 드는 불안. 분명이 밑에서 다정한 보호자와 아동이 안전히 내려오는 걸 확인했으면서도 두렵다.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다니까. 하필 나쁜 예외가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어린 아버지는 한참을 대기 줄 앞에서 망설이는 작은 뒷통수를 관찰한다. 아이가 결국 혼자 내려간다 할까 아니면 같이 타자할까. 결국 아이는 뒤돌아서 보호자의 목을 껴안는다. 자기는 아직 그만큼 어리다고 안심하면서. 이 정도 보호는 받을 자격이 있다는 듯이 당당하게.

 

 그 후로 지렁이젤리처럼 꼬불꼬불하던 원통 미끄럼틀을 뒤로 기어코 많은 시간이 흐른다. 그게 일장춘몽처럼 스님이 잠결에 나비가 날아가는 꿈을 꿨다던 이야기였던가. 내가 잠드는 순간 나비를 본 것인지, 나비가 잠드는 나를 꿈 군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시간. 어느 순간 어떤 경고도 없이 사라진 존재를 아이는 기억한다. 영원히 사라졌다는 그 부재를, 단단한 공간감을 느낄세도 없이 당신을 두고 온 곳에서 그대로 자라버렸다.


 그래,이건 클리셰라고, 세계 어딜가든 어느 도시를 가든 전승되는 닳고 닮은 이야기라고. 그래도 그렇게 흔해빠진 세속극이라도 그 부재가 지닌 공간은 넓고도 깊다. 여전히 궁금하다. 그 너머의 곳에서 당신은 햇볕이 잘드는 곳에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보면서 지내는지.

 

그러니 이제 말하라고, 보는 것을 말하라고, 오직 그 사이로만. 꿈을 꾸면 언젠가 갔던 면회장에서 당신과 나 사이에 놓인 테이블 하나, 그 사이 머나먼 들판이 깊고도 넓은 태평양 바다가 아득히 펼쳐진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정말 마지막으로 간 것인지, 혹여 나 혼자 성장 영화 주인공처럼 열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물어물어 갔던지, 아니야 그 정도로 야무지지는 않았어. 아마 이것도 꿈 속에서 다 큰 내가 만들어 낸 잔상이겠다. 그렇게 한 남자에게 가는 많은 골목들이 한 남자는 얼마나 많은 골목으로 이루어져서 이토록 기약 없는 기다림을 승낙하게 만드는지. 기다리는 자는 결국 먼 길을 떠나는 이를 헤아려 본다. 두고두고 헤아렸다고 그것이 사랑이고 병이 되었다고.

 

이웃에게는 진주 말, 뜨내기들에겐 서울말, 버스정류장에서는 저희들끼리 서울말들이 얽히고 설킨다. 그 소란 한가운데에서 버스 플랫폼에 사이에 덩그러니 섬처럼 서 있다. 그리고 나는 문득 어느 집에선가 아직 빨래를 삶는 냄새를 밭는다. 그 냄새에 다가오는 버스를 잡을 생각을 잊고서 그대로 멈춘다. 못 박힌 듯 멈춰서 한동안 서 있었다.

이윽코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그런데 손님, 국밥을 좋아하냐고 돌아오는 길에 낭랑한 기사분을 만났다.

진주에 오셨으면, 중앙시장서 국밥 한번 말아야한다고.

 

눈을 감았다 듭니다. 너는 아빠가 없어.

낯선말을 들었는데 새 학기에, 그 몇 해 전만해도 그런 질문은 무척 이상한 말이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익숙해져버린 아이를 생각한다. 그 후로 또 많은 분초가 지나서 본 영화에서도 그런 대사가 나왔는데.

 

스크린 가득 찬 주름진 어머니가 황망하게 묻는다.

 

너는 엄마가 없니?.”

 

아니 엄마도 없니였나.

 

언젠가 통근 열차를 기다리며 줄 서 있을 때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다가 발끝만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모두 섬이라는 걸 깨닫는다. 단순히 잡념으로 느끼는게 아니라 점점 더 확실해진다. 우리의 발끝마다 서려있는 부재들을, 그건 타임밍의 문제였는데 어쩌면.

결국 우리 모두가 고아였는데 전설처럼, 전해져오는 부재의 이야기들에 가려서 의례 겪는 일로 포장했지만 결국 우리 모두 고아였는데.

 


 언젠가 무슨 기운에서인지 텅빈 교실 아침에 첫째로 등교한 날에는 세상 혼자로, 그곳에서 여전히 당신을 기다림을 실감했다. 두 명의 몫을 하나로 받아내는 어머니의 서늘한 신경이 언제고  등골위에 들러붙어 있을 때마다 화가났다. 어느새 돈은 당신의 부재란 공간이 준 부록같은 거였는데어느새 그 곁가지가 그리움자체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고친구들이 잠깐이라도 집에 들리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식당에 가서도 메뉴판을 보면서 고민하는 게그냥 선택장애로 뭐가 더 맛있을까 고민하는 장난스런 일이 아니라 내게는 가격표의 동그라미 하나하나 주머니 속 잔액을 어림짐작하는 투쟁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온순한척 모든걸 감내하는 애어른인척 연기했지이조차 못하면 스스로가 너무 불쌍해서 견딜 수없을 테니까.그렇게 되돌아오지 않는 모든 호응들에 지쳐버린 아이


  이제 아이는  훌쩍 커서, 여전히 그 시절의 그대를 기억해보려한다.

 여기 살고 있었던 거구나 한숨짓듯이 토해내면서 여기있다고,아직 나는 여기에.


  어떤 뒷모습이 보인다. 언제나 그 뒷모습만이 주변 모든 소리와 풍경은 블러처러되고 음소거된 채로 부각된다. 그리고 쏟아지는 햇빛인가 구름사이로 그 이는 돌아보지 않는다. 고집스럽게 이미 지나가버린 얼굴 없는 이름들은 거대한 시간을 쌓는 벽돌이 되어 그대로 자신의 것 없이 사라진다. 그 으스러지고 흩어진 이름들을 주어담는다. 허겁지겁 간신히 따라 잡아 주어 담아도 발자국도 없이 내달리는 그 이들을 잡아 세울 수가 없다. 어떤 열의와 성의를 보여도 목 놓아 울며 불러 봐도 이미 날아간 이야기들은 오직 미행만을 허락한다. 제한된 증거들 안에서 스스로 분열해버리는 증언과 기억들만을. 이제 와서 어떤 청자도 없는 이야기는 그저 풍화된다.

 

 그러니 누군가가 잠시라도 머물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기록되지 않아서는 쉽게 바스라질 사연들을 줍고싶다는 글쓴이를 애정하게된다. 도토리줍는 다람쥐처럼 바지런히 줍는, 쓰는 이의 마음이귀하다. 누군가에게 기어코 가 닿는 이야기를 열망하는 마음에 감사한다.

앞으로 더 오래오래 은은한 모닥불 피우듯이 행간에 흩뿌린 진주같은 이야기들을 주어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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