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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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에 사두기만 했다가 정작 읽는 것이 두려워서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서야 이 책을 완독했다. 사실 분량도 적은 편인데다가 문체도 굉장히 간결 담백해서 맘잡고 읽으면 몇시간만에 훅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담백한 문체 안에 녹아있는 내용들이 너무 힘들고 답답했다. 이 책 말미에 붙어있는 작품해설에도 나와있지만, 정말 이 책은 완벽하게 보편성을 추구하는 작품이었다.



일반적으로 소설의 주인공은 독특하다. 독특한 주인공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삶을 사는지가 소설의 흥미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은 익숙하다. 특수성이 아니라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 이 소설의 특수성이다. (김고연주 _ 작품해설: 우리 모두의 김지영)



이 책을 읽는 독자들. 특히 여성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힘들어하는 부분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김지영, 그리고 김지영의 언니 김은영, 엄마, 시누이까지.. 등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전혀 새롭지 않고, 심지어 너무 익숙해서, 이게 소설인지, 르포인지, 내 여동생 일기장인지 분간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등장하는 남자들의 캐릭터도 마찬가지이다. 너무나도 익숙한 등장인물들과 상황들이 펼쳐진다.



『82년생 김지영』의 에피소드들은 무척이나 사실적이다. 어린 시절, 학창 시절, 회사 생활, 결혼 생활에 잉르기까지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경험들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앞에 그려질 정도다. 아마도 독자들은 자신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나와는 달리 김지영은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런 행운은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김지영마저도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이쯤되면 내가 김지영인지, 김지영이 나인지 헷갈릴 정도다. 김지영이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고연주 _ 작품해설: 우리 모두의 김지영)



사실 이 책이 나에게 더 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또 있다. 김지영, 김은영과 나는 같은 또래이다. 김지영의 가족과 비슷하게 딸-딸-아들의 삼남매였고, 줄곧 할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6식구가 함께 생활해 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할머니는 아직도 비교적 정정하게 살아계신다는 것 정도. 읽으면서 환경, 시대, 겪는 상황들, 각 장면을 접하면서 드는 생각들.. 이 모든 것이 100% 일치한다고 할 순 없었지만,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런 작품은 처음이기도 하고 그러하기에 더 힘든 작품이기도 한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여성독자들은 오히려 남성들이 읽어야 한다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나 역시 그 이야기에 공감한다.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힘든 것은,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현실'이고, 사실 '진짜 현실'은 책에 나와있는 이야기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많은 여성독자들이 책을 읽고나서 이야기하는 반응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남성들은 이러한 이야기가 생소한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 이건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닐거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자신들이 가볍게 지나친 상황들을 다시 곱씹어보게 되었다는 남성독자들도 꽤 있다. 그만큼 남녀사이의 간극이 아직도 굉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는 절대 남성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갑갑해지지 않는 여성이 몇이나 될까? 이전보다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정작 체감하고 있는 여성들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는 뭘까? 그렇다. 나아진 것 같아 보이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굴레가 되고 스트레스가 되어버리는 사회가 되었다. 여성문제가 이제는 종교나 정치문제처럼 매우 첨예하고 민감한 문제가 되어버린 사회가 되었다. 어찌보면 이 책은 여성도, 남성도, 굳이 읽고 싶지 않은 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책을 우리가 함께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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