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28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평점 :
판매중지


정유정의 소설을 사실 처음 읽었다. 7년의 밤이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몇번을 읽어보려 시도하였으나, 왠일인지 번번히 기회를 놓치게 되었고, 그러던 와중에도 다음 작품들이 나오곤 했었다. 이 책도 그렇고, 7년의 밤도 그렇고 정작 읽지는 않았음에도 대강의 스토리나 설정 등은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서 이미 알고있었다. 그러던 중에 좋은 기회로 이 책 『28』을 읽게 되었는데, 사실 이 스토리 자체는 그다니 읽고싶지 않은, 아니 어쩌면 피하고싶은 스토리였다. 사실 전염병이라는 소재 자체가 너무 무서웠고, 그로인해 상상되는 상황, 고립과 불신, 공포의 이미지가 책을 읽기도 전부터 그려져서 처음 책장을 넘기기까지가 참 오래걸렸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치자마자 쭉 빠져들게 한 것은 바로 책 내용 그 자체였다. 첫장을 넘기면서 등장한 에필로드씬은 바로 책에 집중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러면서 왜 정유정 작가가 그리 인기있는 작가인지를 실감하게 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단순하게 전염병으로 인한 공포, 재난과 도시 봉쇄로 인한 참상 만을 그리고 있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기에는 반려견 혹은 반려동물과 사람, 혹은 생명이 있는 것들과 사람이라는 생명체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고 있고, 이러한 비상상황에 어떠한 것이 진리인지, 어떠한 것이 최선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28》은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상징적 매개로 인간과 자연의 원초적인 '불평등 계약'의 의미를 성찰하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정여울_작품해설)

저 상황에 나라면...이라는 꼬리표도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물론 계속되는 결론은 나에게는 닥치지 않는 상황이었으면 좋겠다는 것.

또한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조연 그런거 상관없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평등하게(?)죽었다. 이상적인 기대를 하면서 읽기에는 너무 현실적으로 참혹하게 그렸다. 가장 안타까운것은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화양시 그 혼란속에 있었다는 것 만으로 무고한 생명도 많이 사라져갔다는 것이다.

전염병의 광기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전염병이 아닌 '다른 이유'로 죽어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정여울_작품해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더 사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서 당혹스러웠다. 작가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현실도피를 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극한의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고싶어하는 우리를 '마주하고싶지 않은', 하지만 '사실에 가까운 상황'으로 자꾸 끌어다놓았다. 아마도 소설속에서 일어나는 가상의 일들이, 현실에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마치 실제로 일어날 것만 같아서 더 괴로웠던 것 같다.

이런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중간중간 동해에 대한 분노가 끊이지 않았고, 수진과 수진의 가족, 기준에 대한 안타까움, 개인적으로 멋졌던 박형사님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책을 읽고 난 이후에도 계속 머리속에 남아있는 쿠키와 스타와 링고... 마지막에 재형이 눈을 감을 때는 실제로 눈물이 나더라. 줄곧 읽는 내내 줄을 치게 만들었던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요 목적이라는 것. 수진을 통해서도 윤주를 통해서도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사는 것 이외에 어떠한 것이 더 중요할까? 그리고 살기위해 우리가 행하는 것들은 어떤 가치가 있고, 살기위해서 포기하는 것들은 또한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 소설 한 권 읽었을뿐인데, 머리속이 너무나도 복잡해졌다. 나 그렇게 철학적인 사람 아닌데.. 살아남는 것이라는 아주 심플한 메시지였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복잡해지다니. 시간이 난다면 나중에 다시한번 읽어봐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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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달걀 2017-05-17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유정은 참으로 지독한 작가인것 같아요... 물론 그래서 좋아하지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