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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송태욱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6월
평점 :
아무리 차려입고 나가도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는 나이, 젊은 연적이 있다면 비교되기에도 안쓰러운 나이, 어떤 미인도 추녀도 같아진다는 미모의 평준화가 되는 나이, ”소설도 안되는 나이의 여자“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소설도 안되는 나이 오십대의 미쓰키가 주인공인 소설이라니 그 자체가 아이러니이다. 나를 포함해 오십대이거나 눈 깜짝할 사이 오십대가 될 모든 이들, 오십대였던 모든 이들이 공감하며 몰입해서 읽을 소설이다. 어머니를 보살피는 기나긴 노동 끝에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지난한 과정을 그린 1부와 어머니가 남긴 유산, 그렇다. 어떤 비유도 아닌 돈이다. 그 돈으로 경제력을 확보한 후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난 남편과 이혼하는 과정을 그린 2부로 이루어져 있다.
까다롭고 허영심 가득해 요구가 많은 어머니로부터 딸들은 해방되기를 기다리지만 의학의 발달로 각종 생명 연장기구들을 연결하고 연명하는 어머니는 좀체로 죽지를 않는다. <이방인>의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가 반복해 인용되며 딸들은 드디어 그 ‘오늘’을 맞는다. 이 과정을 보며 존엄한 죽음은 언제 어떻게 가는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몇살까지 살다가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운명하는 것이 적당할까 라는 고민도 있지만 결국 어떻게 살아야할까가 문제다. 미쓰키의 엄마는 허영과 사치의 화신으로 딸들을 조정하고 끝없이 요구하는 어머니이다. 그러니 이런 어머니에게 자식이 해야할 도리를 할 뿐 그 이상의 관계를 기대하기 힘들다. 다른 가족과 어떻게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나의 죽음이 그들에게 아쉬움으로 그리움으로 남게 될까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의 죽음 후 남편과의 관계를 직시할 여력이 생긴 미쓰키가 이혼에서 받을 재산 분할과 남은 여생을 보내기 위한 돈을 철저히 계산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결혼을 앞두고 “사랑이냐, 돈이냐” 하며 고민하는 이야기가 많지만 이혼을 앞두고는 “남편이냐, 가난이냐” 의 선택지 앞에 서게 된다는 말도 실감이 확 난다. 미쓰키의 어머니는 힘들게 했어도 그녀의 독립을 돕는 중요한 경제력을 유산으로 주었다. 소설의 후반부는 미쓰키가 혹시 자살을 하는건 아닐까,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닐까 등으로 계속 궁금하게 하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스포일이 될까봐 결말은 이야기 하지 않겠지만 하여튼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혼하는 과정에서 김치 싸대기도 좀 때리고, 화 김에 다른 남자와도 자는 등 험한 드라마를 좀 보여주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역동적인 아침드라마적인 요소는 없다. 밋밋한 리얼리티를 인간의 내면까지 속속들이 파헤쳐 그려낸 프랑스 예술 영화 같은 문학작품이다. 하긴 아침드라마스러운 요소는 미쓰키의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에서 다 나오긴한다. 돈을 보고 결혼했다가 자식의 가정교사와 눈이 맞아 도망치는 외할머니와 그녀의 딸 어머니가 노래 선생님과 바람나는 이야기 등등. 그녀들의 드라마틱한 외도는
과연 소설 전반에 얽혀있는 <마담보바리>와 <금색야차>라는 일본의 신문소설을 읽으면서 그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데 문학이 현실의 삶을 휘감아 휘두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생각건대 미쓰키 자신은 신문소설의 사생아였다.”(380)
일본인들의 프랑스에 대한 동경은 엄청나다고 하더니 이 소설 전반에 걸쳐 진진하게 전개된다. 작가 미즈무라 미나에 자신도 열두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교육받고 살았다는 배경을 보니 그런 전개가 이해가 간다.
당연 나의 어머니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말년의 어머니를 견디기 힘들어했지만 나는 어릴 때의 엄마보다 말년의 어머니를 더 그리워한다. 80대에 큰 병을 극복하고 다시 살아나신 엄마는 끝까지 위엄을 잃지 않고 독립적인 생활을 하려 애쓰시며 스스로의 루틴을 분 단위로 만들어 열심히 사셨다. 미쓰키의 엄마가 시험을 봤다가 떨어졌다는 명문 나라여자사범학교를 나오신 분 답지 않는가? 그 학교 이름이 나와서 깜짝 놀라며 반가웠다. 소설 내내 어떤 인물을 소개할 때 어느 지방 출신으로 어느 학교를 나왔다 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요즘 MZ 세대들이 읽으면 이 왠 구한말의 신소설인가 할 것 같다.
서양을 동경하는 동양여자들의 이야기는 내 세대에서 끝날 것 같다. 소설의 줄거리를 듣던 20대 딸은 먼 나라를 동경하기 보다는 자신의 뿌리를 찾고 나와 가까운 것들을 소중히 하고 나의 것을 구축하는 것에 관심있다고 했다. 하긴 그 딸이 이미 서양식 교육을 흠뻑 받았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그리운 어머니가 남겨주신 유산에 감사하고, 유학 가는 딸을 보내며 <어머니의 유산>을 빠져서 읽었다. 우리 모두 끈끈하게 얽혀있지만 각각 혼자 설수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 혼자 설수 있도록 최대한 오래도록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강건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