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 마로니에북스 36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 청림출판 / 1991년 11월
평점 :
품절


일본의 명상가 무요앙 에오는 <설국>을 읽고 뭔지모르지만 아마도 그는 '깨달음에 가까운 경지를 아는 사람같다'라고 했다. 야스나리는 책 중의 주인공 시마무라의 말을 빌어 <멍하니 텅빈 것 같은 상태>라는 말을 한다. 시리도록 투명한 눈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가벼운 사랑, 부유한, 그렇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한량이 갖는 어떤 자연적 감수성이 너무도 눈물나도록 아름답게 묘사된 책이다. 우리의 상식으론 눈물날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너무도 투명하게 아름다워서.

주인공 시마무라는 얄미울 정도로 아무런 감정성이 없는 사람같다. 마치 그는 거울과도 같다. 그의 눈에, 마음에 비추어진 사물, 사람, 나아가 아름다운 여인들, 요오코, 고마코조차 마치 맑고 투명한 거울에 비추어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거기에 가볍게 감각의 생채기, 추억이 남았건만 그 회상조차 객관적이고 투명한 느낌이다.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환상으로서의 그 겨울의 느낌! 시마무라는 시종 무심의 감정이면서 고도의 의식상태 속에 있는 사람처럼 한걸음 떨어져 '관찰하는' , 주관과 애착이 개입되지 않는 순수한 관찰자의 섬세한 감각의 시선으로 눈의 고장에서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아가씨들, 고마코 그리고 요오코에 대한 추억을 회상한다. 그리고 하나의 풍경을 묘사하는 것처럼 그녀들의 모습, 오직 그 모습만을 집중 묘사하고는 사생활에 관한 부분은 가볍게, 궁금할 정도록, 감질날 정도로 조금 표현함으로써 그녀들의 심리상태는 물론, 나아가 엄청난 신비과 궁금증을 유발하게 한다. 그것이 또한 못견디도록 재미난 요소라고 할까. 이는 이 글의 목적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애환을 담기보다는 그저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처럼.....이것이 아마도 일본의 심미주의라는 걸까.

생각건대 야스나리는 오로지 이 문학을 탄생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섬세한 감각의 연마를 한 사람같다. 그의 초연하고 투명한 문체는 너무나도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 어떤 때는 그 투명한 군더더기없는 문체의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책을 많이 읽다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거울의 눈에 비친 세상의 진실이란 그처럼 투명한 느낌만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때로 그 거울에 똥물이 튀어 아무것도 보게 없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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