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의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예니 / 1997년 12월
평점 :
품절


전에 고등학교 도서관 써클활동시 도스또엡스키에 대해 다룬 적이 있었다. 이때 처음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었다. 물론 그 당신엔 소위 애써 지식인 젊은이의 비관적이고 음울한 분위기라면 무엇이나 매료되었기 때문에 이 장문의 작품을 독파했다는 것은 일종의 자부심과 함께 무조건적 숭배를 했을 다름이다. 하지만 솔직히 대충대충 읽었기 때문에 큰 줄거리와 동시에 인물의 성격마저 두리뭉실하게 오해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 작품의 심상치않은 무게감각을 본능적으로 간파한 나는 예전부터 그 작품을 명작의 대열에 고집스럽게 올려놓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정도 고정관념과 예리한 분석력이 더이상 진보가 없는 근래 이 책을 재독했다.

그리고 몇달 간 질질 끌어가며 마침내 이 책을 덮었을 때 나는 여전히 이 작품의 수준을 깎아내릴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중간중간엔 추리소설같은 냄새를 풍기면 속도감을 느꼈고 간혹 장황한 대화, 인물묘사에 엄청 지루해 하기도 했다. 후반부에선 법정소설적 수법과 함께 여전히 흥미진진하다가 따분하다가 하면서 한시 독자의 마음을 가만두지 않았다고 할까. 말하자면 해발높은 등산을 우여곡절 끝에 정복한 것과 흡사한
여운을 남겼던 대작이었다.

물론 최근 작가들의 세련되고 톡톡쏘는,흡인력있는 문체를 구사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겉만 번지르르한 문체가 따라잡을 수 없는, 집요한 면으로 독자를 압도하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일단 등장인물의 개성을 너무도 판이하고 독특하게 설정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확연하고, 이처럼 분명하고 이처럼 인간 그 자체의 전형을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신랄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이토록 스케일이 크게..... 그의 무거움, 그의 남성적 수법, 집요한 인간관찰에 대한 인내력, 글발에 거의 경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2000년 인류의 문학사에 5대 귀재임을 나는 단연코 말하고 싶다. 결국 문학은 문체가 주는 희귀한 재능의 귀재도 가치있는 것이긴 하지만 작가의 사고, 재능, 경험 이 모든 3박자가 드라마틱하지 않으면 안되는 도스또엡스키는 그 전형이다. 표도르 까마라조프, 스메르쟈코프, 이반 등이 악의 상징이니 드리뜨리가 정직, 알료샤가 성스럼움의 상징이니 하는 구태의연한 말로 이 책을 격상하는데는 질렸다.

그러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독특한 개성을 지녔음에도 인간사회의 이모저모 인간형의 전형이었다는 생각뿐이다. 완전히 개연성있는 인간들.....

이 책의 개성적 인물들 중에 나는 역시 '이반'을 꼽고 싶다. 전형적인 현대의 고뇌하는 인간형의 상징이랄까. 전에 이반의 무신론과 비관론에 꽤나 매혹을 느꼈는데 이제보니 이반이 참 불쌍한 인간이란 사실이 재독후의 약간 달라진 점이다. 이반은 스메르쟈코프보다 냉혹하지 않다. 반면 양심이란 것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고 있다. 이것이 속마음은 아버지 표도르의 '악'과 닮았지만 또 닮지않게 하는 구분이랄까. 이반의 그처럼 이중적 성격은 곧 인류의 대다수가 지닌 고뇌와 악의 이중적 속성 그것이다.

알료사같은 인물이 사회에 사분의 일이라도 있다면 세상은 축복받은 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처럼 겉과 속이 일치하는 성자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은 작가의 이상형인 것이 분명하다. 그처럼 사람을 분별하지 않고 그 자체로 사랑하며 평등하고 보이지 않는 유일한 진리를 하느님임을 인식하고 또 그 신처럼 인간을 사랑했던 인간.........이 글이 미완성이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알료샤의 방황기가 통째로 빠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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