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여 안녕 - 풍림명작신서 56
프랑소와즈 사강 / 풍림 / 1990년 12월
평점 :
절판


<슬픔이여 안녕> 그리고 <어떤 미소> 그렇게도 익숙했던 책명! 이 책은 내 나이, 훨씬 이전부터 묶은 채로 우리집 서고에 박혀있었다. 어머니가 '아가씨'시절에 보던 책이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저히 우리의 50대 기준으로 상상할 수 없었던 유럽적 도시미, 현대미, 권태, 여유가 물씬 풍기는 것이, 책이었다. 아마도 그 시대에 읽었던 사람들은 무슨 순정문화를 보는 듯했을 것 같다.

그렇게 묶은 책이었는데도 얼핏 보기에 매우 도시적이고 관능적인(그것은 학창시절의 어린 불가해하고 지루한 어른의 세계를 말하는 것 같아서 별로 흥미를 끌지 못했다.)인상을 받았다. 20살이 넘고도 훨씬 이후에 그저 심심풀이로 이책을 주워들었던 나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흡인력있고 그토록 깔끔하고 그토록 가벼운 책이었을 줄이야.

이때까지 무겁고 육중한 고전 문학만을 인정했고 또 그것에 지쳐있을대로 지쳐있었던 내게 그녀의 소설은 거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천의무봉'이란 말을 이런 때 쓰고 싶다. 거의 직감적으로 나는 이 작가가 글을 쓸 때 거침없이,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줄줄, 하나도 고치지않고 써내려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재능에 첫눈에 매혹당한 나는 그녀의 소설에 탐닉하기 시작했고 이젠 그녀 재능의 바닥까지 보았다고 할까. 너무나 악의적인, 깜찍한 그녀는 이제는 늙었고, 그런 수법은 더이상 나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슬픔이여, 안녕><어떤 미소><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일련의 삼총사 걸작을 그 황금의 젊음에 배출해내고는 그 천재성과 그 댓가로 덤으로 글을 쓰며 평생 욹어먹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처녀작 <슬픔이여 안녕>으로부터 <어떤 미소><브람스....>까지의 이른바 톡톡 튀는 세련미와 여성적 감수성, 재기발랄한 소설군들 이후엔 이렇다할 작품이 없는 게 안타깝다. 이 삼총사소설군은 어느 하나 무시할 수 없을만큼 완벽한 문체 그 자체이다. 내용도 너무 여성스러워 한편의 베스트극장을 보는 듯한 흠이 있지만 그녀의 인간, 특히 여성 심리(이것은 곧 그녀의 심리이다.)를 간파하고 묘사하는 점은 그 문체와 더불어 그 작품을 가볍게 볼 수 없게 만드는 탁월한 면이 있다.

그리고 어떤 작가들도 세개 이상의 명작(문체와 내용면에)은 쓰지 못한다.

<슬픔이여 안녕>에 나오는 소녀, 여주인공은 곧 사강의 성격에 대한 하나의 자화상이 아니었나 싶다. 첫번부터 나른한 권태가 느껴지는 듯한 말을 해대는, 소녀의 심상치않은 말에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관능적인 반항, 그리고 소녀들 특유의 치기가 결합된 심리를 그 어린 나이에 정확하게 포착한 사강은 그 나이에 모든 것을 간파한 그 이름도 유명한 '천재여류작가'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언제나 천재들은 그 젊은 나이에 모든 걸 눈치채고 경험한 결과 남은 생은 그처럼 무방비하고 방만하게 사는 걸까.

그녀가 격찬한 랭보 또한 이미 20살 이전에 모든 정열의 시를 발산하고 전혀 현실적인 삶을 살아버렸다. 문학을 꿈꾸는 작가생들이라면 이런 미워할 수 없는 악의가 느껴지는, 방자하고 거침없는, 자유분방한 문체 하나 만으로 사강을 사랑하고 그녀의 작품을 필수적으로 탐독해야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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