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례기 - 창비장편소설
방영웅 지음 / 창비 / 1997년 7월
평점 :
품절


문학평론가 구중서는 이 작품을 '생명과 삶에 대한 본능적 긍정이 야만스러울만큼 징그럽게 그려져 있다.'라고 말했다. 기가 막힌 평이다. 책을 넘기다가 똥례의 원시적일 만큼 소박한 행동에 몇 번이나 툭툭 웃음이 터져나오던지. 그러면서도 내내 마음이 개운치 못했다. 뭐랄까. 인간의 삶, 우리가 그토록 인간적이라 부르는 순수한, 순진한 삶이 문화가 빠졌을 때, 예의가 빠졌을 때, 고정관념이 빠졌을 때, 다름아닌 본능적 삶 , 동물로서의 인간 그것이 아닌가!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인간 동물로서의 비정함, 자유. 잔혹.....

새삼 똥례가 삶의 희생자였느니 어쨌느니 평할 마음은 전혀없다. 사실 똥례는 쾌활하고 순박하며 매사 잘 적응하고 현실적이며 순종하는 성격으로 거의 이런 천품이 본능적, 동물적으로 까지 느껴져셔 나는 그녀에게서 서늘한 해학미밖에 느낄 수 없었다.

철봉의 벙어리 형수가 가권을 휘두르며 '아기'에게 젖은 안주고 남편에게 젖을 주며 아기가 죽은 것. 용팔의 아내 병춘의 도살장에서의 '돼지불알' 도둑질. 똥례와 동평의 그 어머니에 대한 시녀같은 노예적 가사살림, 노랑녀의 축첩(남자 축첩이다!) 거지 미친년 옥화의 행각, 용팔과 병춘의 비사교적이다 못해 주술적인 부부애. 똥례의 처녀쥐..... 삶은 시골적이다 못해 야만적이며 너무도 강결하게 느껴진다. 도시인의 잔인하고 무기력한 패륜에 비한다면 이 시골인들의 패륜은 순박하다못해 너무도 비천하고 생동감넘쳐서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작가의 문체는 세련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골에 대한 해박한 상식, 그 야성적인 어투와 절묘하게 섞인 서정성은 번지르르한 작가들의 문체를 압도하는 면이 있다. 이것은 거의 줄거리의 승리랄까. 일본의 일본다운 색깔을 내며 그 전통성과 문학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작품이 <설국>이라면 이 작품은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한국적인 색깔, 한국적 배경, 정신,을 가식없이 있는 그대로, 묘사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야하고 음흉하고 원시적이고 뒷담하기 좋아하는 비천한, 잡초같은 사람들......그리고 한국의 자연풍경, 토산물, 등이 가슴 아릴 정도로 풍부하게 생생하게 그 배경을 장식하고 있다. 끝부분, 영철의 노름 장면의 속어와 욕설이 지나치게 장황하고 길 게 설정한 것이 옥에 티였다.

한국의 문학을 세계에 소개하자면 아니 한국 문학의 개성은 바로 이런 식의 소설이 되야하지 않을까. 지나치게 현란한 문체, 중압감, 아니면 도시적 파리함이 느껴지는 가벼움, 상큼함, 재기발랄함. 이 팽배한 오늘날 우리 문학가들에 대한 내 염오를 달래주는 소설이었다.

뛰어난 작품은 십년에 하나 꼴로 나올까말까하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오늘날처럼 문학과 예술이 일반인의 교양정신에 까지 침투한 결과 '쓸어 버릴 만큼' 예술가들은 많다. 그러나 명작은 아무리 유명한 작가들이 잇달아 히트작을 내도 결국 날이갈수록 좁혀지기 마련이어서 결국 십년에 하나 꼴로 우수작이 탄생하면 다행이다. 그리고 그 걸작은 한 예술가의 기량과 다작이 아닌 그 예술가의 광기와 몰입, 열정, 천재성이 응축돼 일종의 우연으로 다작 중에 하나가 선택되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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