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 깐깐한 의사 제이콥의 슬기로운 의학윤리 상담소
제이콥 M. 애펠 지음, 김정아 옮김, 김준혁 감수 / 한빛비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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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오래전 어릴 적,

면접 준비를 하던 시절에, 가장 어려웠던 것이

정해진 문제를 해결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

이런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자기주장을 이야기하는 연습이었다.

성격이 이래서 그런지

이말도 맞는 것 같고 또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말도 또 맞는 것 같다고 끄덕끄덕 하면서 결정을 내리는걸 너무 어려워하는 나에게는

모범 답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 책을 보면서 그 때의 고민들이 떠올랐던 것 같다.

과학이 발달하고, 의학이 발달하면서 최신 의학을 이용하게 되어 좋은 점이 많이 생겼지만,

동시에 그것을 이용하게 된 우리들에게 많은 도덕적 문제들을 함께 안겨주는 시대가 되었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들.

이 책의 머릿말에서는 이야기한다.

당신이 의료 분야에 종사할 계획이 있는 사람이든, 인기 텔레비전 쇼에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심심찮게 다루는 윤리적 논란에 흥미를 느끼는 일반인이든, 이 책에서 앞으로 소개할 난제들은 분명히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책을 보면서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을 살펴보거나 '현실 세계'에서 펼쳐지는 어지러운 논란에 주목하고, 식사 자리에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기분 좋은 논쟁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p16-17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정말 많은 문제들이 있다.

1부. 현장의 의사들이 고민하는 문제들

2부. 개인과 공공 사이의 문제들

3부. 현대의학이 마주한 문제들

4부. 수술과 관련한 문제들

5부. 임신, 출산에 얽힌 문제들

6부. 죽음을 둘러싼 문제들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몇 부분을 잠시 적어보았다.

총기 무장 강도 사건에서 강도가 쏜 총에 맞은 사일러스는 범인의 인상착의를 설명하지 못하고 '내가 그놈 다리를 쐈어요'라는 말만 남긴 채 숨을 거둔다. 경찰이 의심하는 소문난 범죄자인 웨슬리는 강도 사건이 발생한 지 2시간 뒤, 다리에 총상을 입고 어느 시립병원 응급실에 나타난다. 경찰은 웨슬리 다리에 박힌 총알을 사일러스의 권총에 남아 있는 총알과 대조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총알이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로 쓰일 것을 알아차린 웨슬리가 총알 제거 수술에 동의하지 않는다.

총알 제거 수술은 부분 마취만으로도 집도할 수 있는 꽤 안전한 수술이다. 경찰이 재판에서 증거로 제출하고자, 의사에게 웨슬리의 다리에서 총알을 빼내라고 명령할 수 있을까?

....

어떤 윤리학자들은 환자의 의사에 반하는 증거 적출 수술은 모두 윤리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브레넌 판사의 균형적 접근법을 받아들이는 윤리학자들은 웨슬리에게 강제 수술을 집도할 근거가 꽤 강력하다고 본다. 수술은 가볍고 범죄 혐의는 심각한 데다, 총알이 결정적 증거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법학과 윤리학에서 자주 연구 주제로 다루는 문제라고 한다. 수술의 위험성과 증거의 중요성을 모두 아우른 '타당성'이라는 기준을 채택하여 포괄 규칙이 아닌 사건별 상황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하는데, 책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결정의 어려움이 이 책에 나오는 주제 하나하나마다 느껴진다.

또 다른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어쨌든 돌아가실 겁니다. 이번달이 아니면 다음 달에요. 하지만 1월 1일 이후에 돌아가시면 그때부터 세법이 완전히 바뀌어서 , 재산의 절반이 손주들에게 가지 않고 정부에 귀속됩니다. 아버지는 그런 일을 절대 원하지 않으셨을 거예요. 놀랍게도 코닐리어스의 다른 자녀 6명까지 그가 세제 혜택을 받고자 일찍 죽고 싶어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재산세 감세 혜택을 받을 목적으로 코닐리어스의 생명 유지 장치를 꺼서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 윤리적일까?

p344-345

"감세 셰택을 받기 위해 안락사를 시켜 달라고요?

라는 제목의 73번째 주제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달라서, 이런 사례에 대한 판례도 여러가지가 있다.

이 경우에는 코닐리어스가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는 탓에 문제가 복잡하지만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

이 책을 읽으면서 만일 이런일이 실제로 나에게 일어난다면? 이라는 전제 하에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에는 총 79개의 사례들과 관련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해보도록 한다.

다양한 부분에서 다양한 문제들이 있었고, 그에 대한 사례를 다루면서 답을 내리는 대신 생각해볼 만한 해설을 붙이면서 마무리된다. 각 사례마다 생명윤리학자, 임상의, 정책 입안자들이 어떻게 그 도덕적 난제를 해결했는지를 전달해 주고 있으며 우리가 맞닥뜨릴수 있을 만한 주제에 대해 미리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많은 사람들은 선의를 지닌 사람들이며 똑똑한 사람들이지만 모든 경우에 같은 결론이 나지는 않는다는 점도, 책을 읽는 내내 더 많은 고민들을 안겨주었다.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통해 현장에서 뛰는 생명윤리학자가 날마다 하는 일을 조금이나마 맛보도록 하라고.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은 이게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며, 나는 이런 일을 판단하며 사는 사람이 아님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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