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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눈사람
조영훈 지음 / 마음향기(책소리)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여기 한 부부가 있다. 젊은 시절 운명적인 만남으로 운명적인 삶을 살다간 부부. 활짝 펴보지도 못한 두송이의 꽃봉오리. 비록 그들의 삶은 짧았을지언정 그들의 삶은 결코 부질없는 것이 아니었다. 죽음에 대항하지 않고 그 운명을 순순히 받아 들인채 삶을 마무리하던 그들의 모습. 자신들은 어찌 되든 상관이 없지만 남겨진 꽃별이가 걱정이다. 어리딘 어린 꽃별이만을 남겨둔채 눈을 감아야 하다니. 내 한몸 사라지는 것도 비통한데 자신의 배우자도 함께 가야 할 길이라니. 과연 내가 그들의 상황에 놓였더라라도 그들처럼 남은 생을 홀연하게 살다 떠날 수 있었을까.
선우와 유희. 그리고 그들의 친구 정화. 어릴적 소꿉친구로 만나 서로에게 마음을 키워가는 그들. 선우에게 마음을 키워오던 정화는 무당인 외할머니의 말에 선우를 포기하고 유희와 이어주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시련이 다가오니. 의사였던 유희의 아버지가 선우의 어머니를 치료하다가 그만 죽게 만든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유희네 가족은 이사를 가고 그렇게 둘의 인연은 끝이나는 듯 했다. 하지만 운명은 거역할 수 없었단 말이던가. 우연치 않게 다시 만나게 된 유희와 선우. 결국 그들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다. 비록 힘든 결혼이었지만 그들은 꽃별이라는 딸까지 나으며 행복한 생활을 영유해 나가는 듯 했다. 그러던 도중에 유희가 먼저 난소암 판정을 받고 그 뒤이어 선우마저도 암을 선고받게 받기에 이른다.
사람들은 말을 한다. 죽는 사람이야 눈을 감아 버리면 그만 이지만 그 뒤에 남아서 삶을 연명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가슴아픈 고통으로 남겨질 것이라고. 그래 어쩌면 그들의 부재에 가장 슬퍼할 사람은 꽃별이일지도 모르겠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엄마와 아빠를 한꺼번에 잃는 슬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에게 주어지기엔 너무나 큰 고통이다. 하지만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는 꽃별이 이기에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죽음이란 존재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어린 아이이기에. 정화라면 이런 꽃별이를 자신의 딸인 마냥 정성껏 보살펴 줄테지. 정화가 있기에 그들도 마음놓고 세상을 떠났으리라-
이 책을 다 덮고 나서 나의 뇌리속에 떠오르는 한편의 시가 있었다. 천상병님의 귀천.
나 하늘로 돌라가리라
새벽빛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들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고 받아들였던 그들. 그렇다고 해서 체념 하지도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보다 더 행복하게 지내고 여유롭게 지내면서 그렇게 죽음을 받아 들이고 있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행복을 느끼며. 이쯤에서 생각해 본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허나 나는 그러한 행복을 멀리에서만 찾고 간과해 왔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아프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의 주변 사람들이 모두 건강히 지내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어린 유희가 그린 초록 눈사람. 햇볕에 흰 눈사람이 녹을까봐 나무의 초록색을 눈사람에게 입혀 주었던 유희. 이렇게 그들은 다시 초록 눈사람으로 태어난다. 햇볕이 아무리 쬐어도 녹지 않을 초록 눈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