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감정, 클래식 - 기분 따라 듣는 42가지 클래식 이야기
클래식 읽어주는 남자(김기홍)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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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였나? 음악 시간에 ‘클래식 음악 듣고 제목 맞히기’로 쪽지시험을 보게 되었다. 한 달 정도 텀이 있었는데 등하교시간을 비롯해 공부할 때, 자기 전까지도 정말 열심히 클래식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비록 반 강제적으로 듣고 외우긴 했지만 그 덕분에 몇몇 곡의 제목은 아주 확실하게 각인되었고 이는 클래식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듣게 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넘게 흐른 어느 날, 클래식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다가 시험에 나왔던 바로 그 음악을 다시 만났다. 음악이 주는 힘은 실로 대단해서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열다섯의 나로 돌아가 음악의 바다에서 유영하며 자유롭게 노닐게 되었다. 어떤 음악은 전주만 들어도 그때의 기분과 기온, 냄새까지도 그대로 되살아나는 느낌을 준다. 음악은 힘든 시절 나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때론 더욱 당당하게, 때론 더욱 솔직하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하다 보니 모두의 삶 속엔 저마다의 BGM이 존재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게도 그랬듯이.

《오늘의 감정, 클래식》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도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클래식 읽어주는 남자’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가수로도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무의미하지 않은 우리의 감정에 음악을 덧입힌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은 인간의 감정인 칠정-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을 각각 6개의 세부 감정으로 나누어 총 42개의 클래식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의 서두에는 유튜브로 연결되는 QR코드가 수록되어 있는데, 찍으면 플레이리스트가 바로 재생돼서 책을 훨씬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기쁘게 들리니 기쁜 음악’ 내지는 ‘슬프게 들리니 슬픈 음악’이라 생각했던 단순한 감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대표적인 예가 도니체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수록된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란 곡이었다. 사실 나는 이 곡이 굉장히 슬픈 곡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주인공이 좌절하거나 슬플 때 흘러나왔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알고 보니 이 곡에서의 눈물은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여인의 사랑을 얻게 되어 기쁨과 환희에 차서 흐르는 눈물이라고 한다. 전혀 다르게 곡을 알고 있었다는 것도 놀랍고 그 눈물이 그 눈물(?)이 아니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또, 클래식 곡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 슈만의 <어린이 정경> 가운데 ‘트로이메라이’라는 곡인데, 이 곡이 클라라가 슈만에게 한 말인 "당신은 때로 아이와 같아요" 라는 한 마디 때문에 시작된 곡이라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저자는 삶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고 이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고민된다면 어린이를 따라가보라고 권한다. 우연히 어느 방명록에서 만난 ‘삶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닌 감탄해야 할 풍경입니다’란 문장으로 망치에 맞은 듯 충격을 받았고, 그날 <어린이 정경>을 떠올렸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러면서 어린시절의 우리처럼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과거에 집착하지 않으며 놀이하는 마음으로 삶을 대한다면 고난이 닥쳐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건넨다. 분명 클래식 음악 이야기인데 어쩐지 삶을 응원받는 느낌이 들어 코끝이 찡해졌다.

저자는 삶을 살아간다는 건 각자가 자기 삶의 작곡가가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답은 없다고. 중요한 것은 나의 속도대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라고. 매일 느끼는 감정에 맞춰 그날의 클래식을 선곡할 수 있을 거라 단순하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뭔가 삶에 대해서 한수 배운 느낌이다. 클래식의 힘을 빌어 나도 내 삶의 작곡가로서 나만의 속도를 가지고 꾸준히 정진해야겠다. largo든 presto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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