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 - 끼니를 때우면서 관찰한 보통 사람들의 별난 이야기
유두진 지음 / 파지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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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남편과 태국으로 여행을 갔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 큰 수술을 받기로 되어 있어 여행하는 동안 행복하다가도 불안감에 시달리곤 했다. 그렇게 즐거움 반 긴장 반으로 마지막 날엔 거의 소강상태였고 맛집을 알아보거나 할 여력도 없었다. 마침 쇼핑을 갔던 참이어서 남편과 나는 푸드코트에 가서 아무거나 사 먹기로 했다. 국물에 밥 말아 먹고 싶은 마음에 똠얌꿍을 시켰는데, 맛집도 아니고 그냥 푸드코트 음식인데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한 그릇 다 비우고 밥도 추가해서 더 먹었다. 뜨끈하고 새콤매콤한 국물을 떠먹으니 어찌나 개운하던지. 남편이 시킨 메뉴는 기억조차 안 나는데, 그날 먹은 똠얌꿍은 아직도 떠올리면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참 맛있었던 기억이다.

뜬금없이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식사 이야기를 한 건 바로 이 책, 《끼니》 때문이다. 서문에 살면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뭐였냐는 저자의 질문이 있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한 끼도 아니고 스페셜한 오마카세도 아닌 그냥 소박한 한 끼가 기억에 남았던 걸 보면 맛보다도 상황 때문이 아니었을까?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기다리고 있는 큰 일에 대한 두려움과 여러 가지 현실적인 걱정을 뜨끈한 한 그릇이 데워준 게 아닐지. 아무튼 그때의 기억으로 수술도 잘 마치고 건강하게 잘 회복할 수 있었다. 밥심이라는 말이 헛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저자에게 밥심을 주었던 끼니, 감동을 주었던 끼니, 행복함을 선사했던 끼니는 어떤 음식이었을까 궁금해하며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속에는 저자가 끼니를 때우면서 관찰한 별난 사람 &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선거 출마하는 선배를 응원하러 갔다 돌아오는 길, 길을 잃고 헤매다 우연히 만난 싸고 맛있는 냉면집 이야기에는 내가 다 입맛이 다셔졌다. 하지만 이름도 길도 기억하지 못해서 영원히 추억 속으로 묻혀졌다는 부분에서는 함께 아쉬워했다. 사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던 터라 남일같지 않았다(난 중국집이었지만). 심지어 계산도 내가 안 해서 카드명세서를 뒤져볼 수도 없다는 게 함정...

아버지 지인 딸 결혼식에 축의금 전달하러 가면서 뷔페인 줄 알고 실컷 먹을 마음에 신이 났는데, 스테이크 코스 요리라고 해서 모르는 사람 사이에서 먹을 수 없다며 그냥 발길을 돌렸다는 대목에서는 화가 났다! 아니, 모르는 사람 사이에 끼어서 먹으면 좀 어때서? 스테이크인데?! 아직 혼밥 내공이 나보다 못하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음식이라면 모르는 사람 아니라 모르는 사람 할아버지랑도 동석 가능한 거 아닙니까, 작가님?!

반면 많이 먹으려고 선배 결혼식에서 먼저 식사부터 하고 결혼식에 가서 사진도 찍고 다시 재입장해서 소식하는 척 많이 안먹는 척 하다 선배 사촌 여동생한테 두 번 입장한 걸 들킨 부분에서는 내가 더 창피했다. 시간순서가 언제가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두 번 입장도 하신 분이 스테이크 포기라니...작가님, 먹는 걸로 장난(?)치시는 거 아닙니다. 그러시면 곤란하다구요.

혼밥 10단계를 저자가 가장 먼저 적은 거라며, 1단계인 편의점에서 혼자 삼각김밥 먹기부터 10단계인 꼼장어 집이나 삼겹살집에서 혼자 구워 먹기를 모두 해봤다는 부분에서는 또다시 분노했다. 아니, 이것도 성공하신 분이 스테이크는 왜 못 썰고! 다음부터는 저자가 꼭 모르는 사람 사이에 끼어서라도 스테이크 코스요리를 먹고 왔으면 좋겠다. 왜이렇게 스테이크 코스요리에 분노하냐면, 내가 스테이크에 정말 진심이라서 그렇다. 못 먹고 나왔다는 부분에서 책장 잠시 덮었다는 불편한 진실....

아무튼 읽는 동안 별난 사람(a.k.a 진상) 이야기에 함께 어이없어하고 분노하며, 보통 사람 이야기에는 어쩐지 짠하면서도 공감하다 보니 금세 읽을 수 있었다. 저자가 앞으로도 끼니를 챙기는 동안 더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람 냄새 나는 재미난 이야기들로 끼니2를 냈으면 좋겠다. 먹고 싶어서 침 꼴깍 삼키며 읽을 준비는 이미 되어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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