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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커빌리티
김현정 지음 / 메이트북스 / 2022년 7월
평점 :
사회초년생일 때 회사에서 만난 팀장님은 애 둘 딸린 수더분한 외모의 아줌마였다. 티셔츠에 면치마를 입고 단화를 즐겨 신곤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재력, 학력 뭐 하나 빠질 게 없는 사람이었다. 강남에 빌딩 여러 채 갖고 있는 우리 회사 사장님의 아내였고(!) 대대로 학자 집안에서 명문대를 다니고 박사 학위까지 있었다. 입고 다니는 옷, 들고 다니는 지갑이며 가방도 알고 보니 전부 명품이었다. 다만 누가 봐도 '나 명품이요' 하는 식으로 로고가 크게 박혀 있는 명품이 아닌, 찐 부자들만 알아보는 명품관에도 없는 리미티드 에디션이나 일반인은 잘 모르는 명품의 명품, 혹은 로고가 거의 없다시피 한 제품이었다. 그때 알았다. 태어날 때부터 돈이 많았던 사람들은 늘 자기 주변에 배경처럼 있는 부를 굳이 자랑하지도 내세우지도 않는구나, 라는 걸. 그녀는 내가 《라이커빌리티》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이었다.
책 제목인 라이커빌리티(Likeability)는 likeable과 ability의 합성어로, 사람들로 하여금 '호감을 갖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여기서 관건은 강한 질투를 유발하지 않되 매력은 머무르도록 하는 것이다.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건 왜 중요할까? 사람들은 질투하는 대상의 잘못에는 오랫동안 분노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결국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위너가 되는 셈이다.
한강이 보이는 곳에 살고 명품을 들고 입던 이른바 '영 앤 리치'였던 한 유튜버가 활동을 접는 일이 있었다. 그녀가 입고, 들고, 사용하던 물건들의 대부분은 짝퉁이었다. 한동안 관련기사로 온 세상이 시끄러웠다. 심지어 그 중 일부의 진품마저 가품으로 취급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정 기간 자숙 후 활동을 시작했지만 반응은 예전만 못하다. 왜 이렇게까지 미움을 샀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범법자를 응징한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자랑하더니 가짜였네? 쌤통이다'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그녀의 실수는 엄청난 러버빌리티에 취한 나머지 이를 라이커빌리티로 낮추는 데 실패한 것에 있었다. 잘나되 잘남을 과시하지 않고 과도할 정도로 베풀어서 질투의 감정을 희석시켰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죄 중에서 가장 큰 죄는 괘씸죄고, 내 불행에 그들은 정의가 구현되었다고 박수친다는 것을 몰랐던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나를 위협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부족한 면을 드러내보이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너그러워진다고 말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결점을 감추려는 본성이 있다. 나 역시 내 부족한 점을 감추고 싶어 하고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받아들이고 실행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도와달라, 알려달라는 말이 내겐 사실 가장 어려운 말이다. 그런 말을 하면 내가 부족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끙끙대고 전전긍긍하면서도 어떻게든 나 혼자 상황을 해결하곤 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도 완벽주의에 가까운 사람이 아닌, 부족함을 스스럼없이 내보이고 기꺼이 조언을 구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라이커빌리티를 갖추려면 일단 나를 성찰하고 정진시키며 내 부족함을 드러내고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잘나되 잘남을 과시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잘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삶, 그거야말로 진정 라이커블한 삶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