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가의 노래 - 혼자서 거닐다 마주친 작고 소중한 것들이 건네는 위로
이고은 지음 / 잔(도서출판)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1년이 끝나갈 무렵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도 엄마처럼 매일 걸어볼까?" 남편은 흔쾌히 그러자 했다. 그날부터 우리의 걷기는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5천 보도 겨우 걸었다. 다리가 붓고 발이 아팠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걸었다. 5천 보에서 6천 보로, 7천 보로...이렇게 천천히 늘려서 지금은 거의 매일 1만 보를 걷게 되었다. 허리가 아파 파워 워킹은 못 하고, 천천히 산책하듯 여유롭게 걷는다. 매일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동네 산책가 부부'가 된 셈이다.

찬찬히 걷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소복하게 쌓인 눈 사이로 종종거리며 지나간 강아지 발자국, 비 오는 날 흙 사이를 돌아다니는 지렁이, 푸릇하게 돋아난 새싹, 나뭇가지 위에 쪼록 돋은 새순,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푼 꽃봉우리, 매일이 다르게 피어나는 꽃들까지...우리 동네가 이렇게 예뻤나? 싶게 매일 매일이 새로웠다. "오늘은 꽃이 더 피었네?" "어제 피었던 꽃, 햇볕에 탔나 봐." 남편과 나의 대화는 걷기로 산책으로 더욱 풍성해졌다.

화가이자 산책가인 저자가 산책하며 만난 작고 소중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산책가의 노래》. 표지에 적힌 말처럼 '거닐다 마주친 작고 소중한 것들이 건네는 위로'를, 나도 매일 받곤 했다. 힘겹게 피어나는 꽃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하던지. 작고 예쁜 것들을 만날 때마다 사진으로 담아두었더니 한동안 휴대폰 갤러리가 전부 꽃밭이었다. 그냥 지나쳐버릴 땐 있는지도 모르는 것들이었는데, 걸음 내딛을 때마다 마주치니 자꾸만 보고 싶은 소중함이 되더라.

책을 읽으며 작은 것들과 함께한 찬란했던 지난 봄날이 떠올랐다. 짧은 산문과 그림을 함께 보니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산책길 맡았던 풀냄새, 꽃향기, 호숫가의 새벽 안개의 촉감이 고스란히 재현되는 느낌! 음악이, 향기가 나를 그때 그 장소로 데려가는 경험은 여러 번 했지만 책이 그런 경험을 준 건 처음인 것 같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아름다운 것을 그리고 싶어진다는 저자의 말이 참 좋았다. 산책길 휴식이 필요할 때 잠시 꺼내 읽어도 좋을, 따뜻한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