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플란드의 밤
올리비에 트뤽 지음, 김도연 옮김 / 달콤한책 / 2018년 1월
평점 :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극지방. 극야와 오로라가 있는 황량한, 지구 가장 북쪽의 스칸디나비아 반도. 모든 사람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 리스트에 한 번 쯤은 들어가 있을 그 곳, 북유럽 극지방.
그 중에서도 가장 북쪽에 자리잡은 라플란드라는 광활한 대지에서 세 나라의 국민으로 각각 분리된 채 순록을 치며
살아가는 소수민족 사미족.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던 그들에게 서구 열강은 자신들만의
우,열을 기준으로 문명을 전파한다는 미명아래 종교, 문화를
강요하며 사미족들을 억압하고, 탄압한다.
북유럽 끝 스칸디나비아 반도 제일 위쪽 라플란드에서 사미족들의 순록치기를 관리하고 보호하는 업무를 하는 순록경찰이
되어 살아가는 사미족 클레메트 낭고. 그를 사수로 이제 막 경찰학교를 수료하고 사미족들의 삶 속에 뛰어든
신참 순록경찰 니나.
어느 날 사미족의 영혼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샤먼의 북이 도난 당하고, 그
다음날 사미족 샤먼의 후손인 마티스가 잔혹하게 살해 된 채 발견된다. 과연 북을 훔친 사람은 누구이며
마티스를 죽인 살인자는 누구인지, 순록 경찰과 경찰은 둘로 나뉘어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사미족이지만 순록을 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삶을 택한 클레메트. 그래도 마음속에 꽁꽁 감춘 자신의 민족에 대한 애정과 연민은 그들을 옹호하고 대변하고자 하는 표현과 행동으로
자꾸 드러난다. 또, 범인을 찾고자 하는 열정과 의지로 한발한발
진실에 다가갈수록 과거 자신의 아픔을 꺼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라플란드에 대한 무지함을 드러내는 신참 순록경찰 니나. 그렇기에
더욱 객관적으로, 편견 없이 사미족과 그들을 둘러싸고 문명의 이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유럽사람들의
사이의 사건을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누가 누구를 미개하다 결정하고 우월하다 결정할 수 있을까?
누가 누구를 문명인이다 미개인이다 판가름 할 수 있는 것일까?
왜 서구 열강들은 그런 교만한 판단으로 소수민족의 종교를 강제로 개종시키고 문화를 동화 시키려 했으며 그들의
것을 빼앗는 것일까?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그들이기에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순종이 미덕이었던 그들
이었다.
그런 그들을 가리켜 “분명히 그냥 순응할거야, 걔네들은
항상 그랬으니까…. “
라는 롤프 브랏센 형사의 말에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그 사람들이 그런 성향을 가졌기에 내가 짓밟아도 되는 것이고 그래도 그들은 그냥 그렇게 순응할 것이라는 그의
뻔뻔한 말에 화가 치밀어 오르며 소수민족으로서 겪었을 사미족의 피해와 상처고통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되어버린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디언들에게 자행되었던 끔찍한 만행들이 소위 가장 선진국의 본보기라 불리는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사람들로부터 그대로 재현되는 것을 보면서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다.
600쪽이라는 방대한 분량, 낯선
지역과 배경지식이 전무한 역사에 대한 내용까지, 그리고 상당히 많은 등장인물들로 인해 책이 빠르게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아주 간만에 이렇게 힘들게, 긴 시간 소설을 읽어본다. 하지만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 줄이라도 건너뛰고 읽고 싶지가
않아서 말 그대로 완전 정독을 하다 보니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사실이다. 처음 프롤로그 사건부터
마지막 사건의 이야기까지 아주 세밀하게 짜여서 있어서 마지막 반전 아닌 반전 부분을 읽을 땐 치밀한 구성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거의 마지막 후반부에서 모든 등장인물의 상황이 설명이 되고 이해되면서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다. 평생 나와 내 아내를 처절한 고통 속으로 밀어 넣은 그 사람을 마주했을 때 아슬락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루하루 그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버티고, 때를
기다렸을까? 순록을 치며 자연과 함께 자연에 동화되어 그저 사미족처럼 살아가고 싶었던 그를 육신만 살아
움직이는 영혼 없는 인간으로 만들어버린 소위 문명인이라 일컫는 그들의 욕망이, 그들의 욕심이 참으로
원망스럽다.
오늘도 여전히 세계 어느 곳에서는 문명인이라는 이유로, 선진국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미개한 종족을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소수민족의 문화를 말살시키고, 강제로
종교를 개종하는 끔직한 일들은 자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분노 게이지는 치솟고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비록 소수민족은 아니지만 우리 역시 그런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기에…
그녀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계속 내 머리 속에 멤돌고 있어 여전히 난 라플란드의 잔상에 젖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