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세계사 - 거꾸로읽는책 3 거꾸로 읽는 책 3
유시민 지음 / 푸른나무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란 객관적으로 사실을 기술하는 것'이라는 교과서적인 정의는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역사를 바라보는 '객관적'이라는 기준 자체가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술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주어진 사료들을 바탕으로 단지 기록들을 정리해나간다면 객관적인 역사 기술이 될 수 있을까? 이런식으로 역사가 정리되면, 재미없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재료가 되는 역사적 사료의 '객관성'도 의심해 봐야 한다.

역사란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건의 해석'이다.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은, 주어진 사건을 재구성해서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신문 편집 기자나 영화 편집 기사와 비슷하다. 역사가는 한 사건을 헤드 라인 기사로 다룰 수도 있지만, 가십란에 몇줄 끄적거릴수도 있고, 심한 경우에는 지어내거나 아예 지면상에서 삭제할 수도 있다. 아니면 영화의 편집 기사처럼 필요한 부분만 잘라내서 쓸수도 있고, 엉뚱한 곳에 붙여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 수도 있으며, 쓰레기통에 집어 넣어 버릴 수도 있다. 사건을 호도하길 좋아하는 언론과 가위질 잘하기로 소문난 등급위원들의 나라답게, 우리 나라 역사가 역시 이러한 편집에 꽤 능수능란한 편이다. 그들의 손에 편집된 역사책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시험에 대비한 암기를 통해서 반복 숙달되고, 이것이 우리 나라 역사 인식의 일반적인 기준점이 된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편집되버렸던 역사의 단편들을 통해서 우리가 주체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편견을 씻어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기술하는 역사가, 최종 편집자인 유시민씨의 역사 기술이 갖는 또 하나의 편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지껏 몸에 익혀야 했던 편견들과는 또다른 편견을 대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관을 중화시키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우리 몸에 익숙한 역사 인식의 이분법적 칼날을 버리고, 복잡한 유기체의 몸속을 들여다보 듯 역사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이 출간된지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이 책에 기술된 사건들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나찌하에서 학살당했던 유태인들은,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을 학살하고 있으며, 대공황의 위협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베트남전에서 보였던 미국의 오만은, '테러 전쟁'으로 재현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인종적인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5.16 박정희의 망령은 아직까지 한반도를 떠돌고 있다. 역사는 본질적으로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실 인식을 위해서는 과거를 똑바로 알아야만 한다. 텍스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